펄 벅의 소설 『대지』에서 주인공 왕룽에게 땅은 삶의 시작이자 끝이며, 어떠한 풍파 속에서도 변치 않는 절대적 구원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대지에 대한 갈망은 흙의 정직함을 잃어버린 채, 하늘을 향해 솟구친 콘크리트 탑의 형상으로 변모했다. 이른바 ‘똘똘한 한 채’라는 현대판 황금 송아지다. 집이 삶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신분을 가르는 계급장이 된 시대, 우리는 자산이라는 거대한 대륙이 두 갈래로 쪼개지는 지각변동을 목도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이 발표한 2026년 1월 조사 결과는 이 거대한 욕망의 지형도를 숫자로 가혹하게 증명한다. 서울 아파트 상위 20%의 평균 가격은 34억 6,593만 원에 달한 반면, 하위 20%의 평균 가격은 5억 84만 원에 머물렀다. 이 극명한 격차를 보여주는 5분위 배율은 단순한 통계적 수치를 넘어선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신분망이 어떻게 고착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이정표이자, 무너진 계층 이동의 사다리에 대한 고발장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격언처럼, 다주택자를 겨냥했던 서슬 푸른 규제의 칼날은 역설적이게도 ‘똘똘한 한 채’라는 괴물을 키워냈다. 다주택에 징벌적 세금을 매기자 시장은 영리하게 반응했다. 지방과 수도권 외곽의 자산을 처분하고, 서울의 핵심 상급지라는 ‘가장 안전한 단 하나의 성벽’으로 자본을 몰아넣는 자산의 다이어트가 시작된 것이다. 규제가 낳은 쏠림 현상은 결국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벌려놓았다.

물론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서민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다주택 규제가 불가피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무제한의 주택 소유를 방치할 경우 시장의 왜곡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 역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시장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아서 억누르면 다른 곳으로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다주택을 죄악시하는 프레임은 결과적으로 지방의 자금줄을 말렸고, 서울 상급지의 가치만을 신화화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선의의 규제가 최악의 양극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가장 뼈아픈 비극은 국토의 균형적 파멸이다. 서울의 초고가 아파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동안, 지방의 주택 시장은 미분양의 늪에서 신음하고 있다. 자산의 양극화는 단순히 통장 잔고의 차이에 그치지 않고 교육, 문화, 의료 등 삶의 질 전반의 격차로 이어진다. 청년들은 ‘인서울’이라는 마지막 동반탑승권을 쥐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으고, 지방은 공동화(空洞化)의 쓸쓸한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

집은 본래 비바람을 피하고 삶을 경작하는 따스한 둥지여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집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바벨탑을 쌓으며 서로 다른 언어로 반목하고 있다. 저 높이 솟은 콘크리트 장벽 너머로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의 온기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대지를 잃어버린 시대, 우리는 모두 스스로 쌓아 올린 성벽 안에 갇힌 외로운 수인(囚人)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