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산디지털단지의 한 15인 규모 IT 스타트업. 대표 A씨는 최근 핵심 개발자로부터 육아휴직 신청서를 받고 복잡한 심경에 빠졌다.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마음도 잠시, 당장 다음 달부터 시작될 대규모 프로젝트의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졌기 때문이다. 채용 사이트에 '대체인력 구인' 공고를 올렸지만, 단기 계약직이라는 조건 탓에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A씨는 "육아휴직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법적 처벌을 받는다는데, 당장 일할 사람이 없으니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초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육아휴직 의무화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지만, 산업 현장, 특히 중소기업의 온도는 싸늘하기만 하다. 제도의 취지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법적 강제성이 높아질수록 영세 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현실적 부담은 임계점에 달하고 있다. 육아휴직이 '그림의 떡'을 넘어 '기업의 부담'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핵심 고리는 무엇일까. 본지는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육아휴직 강제화의 실효성을 담보할 진짜 해법을 짚어봤다.
의무화의 그늘, '독박 노동'과 구인난에 우는 중소기업
정부 발표에 따르면 전체 고용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에서 육아휴직 사용률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다. '눈치가 보여서' 쓰지 못하는 기저에는 동료들의 업무 과부하와 대체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경영난이 자리 잡고 있다. 대기업은 풍부한 인력 풀과 체계적인 순환근무 시스템을 통해 공백을 메울 수 있지만, 10인 미만 영세 기업은 한 명의 이탈이 곧 사업 존폐와 직결된다.
실제로 관련 업계의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중소기업 사업주들이 육아휴직 제도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는 것은 '대체인력 채용의 어려움'이다. 일자리의 질적 차이로 인해 가뜩이나 구인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몇 달짜리 임시직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결국 남은 직원들이 휴직자의 업무를 나누어 맡는 '독박 노동'이 이어지고, 이는 조직 내 갈등과 또 다른 퇴사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법으로 휴직을 강제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다.
현장 외면하는 대체인력 지원금, '미스매치' 해소가 관건
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육아휴직 대체인력을 채용한 사업주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등 다양한 재정적 유인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 지원책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지원금의 규모가 대체인력을 교육하고 적응시키는 데 드는 시간적·물질적 비용에 비해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행정 절차가 복잡해 영세 기업 입장에서는 신청조차 번거롭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매칭의 실패'다. 정부가 운영하는 대체인력 매칭 시스템을 통해 유입되는 인력과 기업이 원하는 직무 역량 사이에 심각한 미스매치가 존재한다. 특히 기술력이 요구되는 제조업이나 IT 분야에서는 단기 대체인력이 즉시 전력감으로 투입되기 불가능하다. 단순히 '일자리 매칭'이라는 행정적 수치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업종별·직무별로 특화된 전문 인력 풀을 선제적으로 구축하고 이들의 숙련도를 높이는 교육 훈련 투자가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실효성 있는 상생을 위한 제언: 패러다임의 전환 필요
육아휴직 강제화가 실질적인 출생률 제고와 노동 환경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규제 중심에서 '지원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 우선 대체인력에 대한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대체인력으로 참여하는 구직자에게 정규직 전환 가점을 부여하거나, 정부 차원에서 '대체인력 전문 경력직' 제도를 도입해 고용 불안정성을 해소해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일자리의 질이 보장될 때 우수한 인재가 중소기업의 빈자리를 채우러 올 수 있다.
동시에 중소기업 맞춤형 '대체인력 매칭 플랫폼'의 고도화가 시급하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해당 지역과 업종의 유휴 인력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공백이 발생하기 최소 3개월 전부터 매칭과 인수인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선제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대체인력을 구하지 못해 기존 직원들이 업무를 분담할 경우, 이들에게 지급되는 '업무 분담 수당'을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방안도 실질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결국 저출생 극복이라는 국가적 과제는 기업, 특히 체력이 약한 중소기업에만 부담을 지워서는 해결할 수 없다. 법적 의무라는 채찍을 들기 전에, 기업이 흔쾌히 직원을 보낼 수 있는 든든한 대체인력이라는 안전망을 먼저 촘촘히 짜야 할 때다. 정부와 노동계,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현장에서 작동 가능한 '한국형 상생 모델'을 도출해야만 육아휴직 강제화는 비로소 빛을 발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