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분쟁 지역에서 성폭력을 자행했거나 이에 책임이 있다고 의심되는 국가·무장단체 명단에 이스라엘군과 러시아군을 처음으로 공식 포함시켰다.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제출된 '분쟁 관련 성폭력'(CRSV) 연례 보고서 부록을 통해 공개되었으며, 외신들은 이를 통상 '블랙리스트'로 부르고 있다. 올해 명단에는 총 77곳의 국가 및 비국가 주체가 이름을 올렸다.
이스라엘군, 팔레스타인인 대상 성 학대…러시아군, 우크라이나 점령지서 가해
보고서에 따르면 유엔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구금 시설 등을 통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팔레스타인인 31명을 대상으로 집단 성폭행, 고문 등 성 학대 행위를 저질렀음을 확인했다. 성기를 표적으로 한 총격, 강제 나체화, 성폭행 협박 등의 행위도 포함되었다. 가해자에는 이스라엘군, 교도관, 특수경찰 대테러 부대원 등이 지목되었으며, 피해자 중에는 성인 남성과 소년들도 다수 포함되어 구금 및 심문 과정에서 성폭력이 고문의 한 형태로 사용된 정황이 포착되었다. 유엔은 이스라엘 남부 군 구금시설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수감자 집단 성폭행 사건을 언급하며 '체계적인 책임 부재'가 면책 문화를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군 또한 우크라이나 내 점령 지역에서 310명에게 성폭행, 전기 충격, 생식기 훼손 등의 학대를 가한 사례가 확인되었다. 피해 생존자의 절반 이상이 반복적인 성폭행에 노출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유엔 측은 양국 당국이 국제 조사관들의 현장 접근을 제한하고 방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체적인 인권 침해 사례가 검증되었다고 밝혔다.
'네이밍 앤 셰이밍' 전략…양국 강력 반발
CRSV 보고서에 성폭력 책임 주체로 명시되는 것은 직접적인 제재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성폭력 책임 주체로 지목되었다는 점에서 외교적·도덕적 평판 훼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번 조치는 유엔이 해당 국가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네이밍 앤 셰이밍'(Naming and Shaming) 전략의 일환으로, 반복적으로 이름이 올라갈 경우 유엔 평화유지 활동(PKO) 참여 금지 등 국제무대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실질적 불이익이 따를 수 있다. 양국은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며 정치적인 결정이자 사실과 동떨어진 결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 대사는 구테흐스 사무총장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했으며, 미국 대사 역시 이스라엘을 테러 조직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 러시아 대사는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며 서한을 통해 반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보고서는 2025년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서 검증된 성폭력 사건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급증했다고 밝히며, 특히 남성과 소년들을 겨냥한 성적 고문 행위 증가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