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의 문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인은 들어올 수 없다'는 선언이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조용하고 쾌적한 공간을 소비할 권리와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거부당하지 않을 권리, 이 두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세련된 배제가 우리 공동체의 안전망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할 때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 잣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올해 2월 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노키즈존'을 허용할 수 있다는 응답은 10명 중 7명에 가까운 68%에 달했다. 반면 '노시니어존'(33%)이나 '노중년존'(32%)에 대한 허용 여론은 그 절반 수준에 그쳤다. 약자에 대한 배제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용인되면서도, 자신 혹은 자신의 미래가 될 수 있는 집단에 대한 배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순적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상업 공간은 단순히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하는 사적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카페나 광장 같은 상업 공간은 서로 다른 타인들이 마주치고 소통하는 '제3의 공간'이자 공공성을 담보하는 무대다. 편의성과 효율성만을 극대화하기 위해 특정 집단을 걸러내기 시작하면, 사회적 파편화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율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회는 결국 작은 갈등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극단적 고립 상태로 치닫게 된다.

나의 편안함이 타인의 배제를 전제로 한다면, 그 편안함은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 모래성이다. 오늘 아이를 배제한 공간은 내일 노인을 배제하고, 모레는 또 다른 누군가를 거부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진정한 품격은 무결점의 고요함이 아니라, 조금은 소란스럽더라도 서로를 견뎌내고 배려하는 포용력에서 나온다.

이제는 '배제의 마케팅' 대신 '공존의 룰'을 고민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금지보다는 타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구체적인 약속을 만들고 공유하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문을 닫아걸어 얻는 일시적인 평화보다, 문을 열어두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우리가 지속 가능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