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갈등 고조와 자원의 무기화 흐름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에너지 협력이 단순한 이웃 나라 간의 공조를 넘어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관련 업계 및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LNG(액화천연가스) 수입량에서 일본은 67.72Mt(점유율 16.5%)으로 세계 2위, 한국은 47.01Mt(점유율 11.4%)으로 세계 3위를 기록했다. 양국의 수입량을 합산하면 글로벌 LNG 물량의 약 28%에 달해, 양국이 손을 잡을 경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흔들 수 있는 막강한 구매력을 갖추게 됨을 의미한다.

글로벌 LNG 시장의 '큰손' 한일, 공동 조달의 실리

한국과 일본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동안 양국은 개별적으로 에너지를 조달하며 공급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불리한 조건인 이른바 '아시아 프리미엄'을 지불해 왔다. 그러나 양국이 LNG 공동 구매나 물량 스왑(Swap)을 활성화할 경우, 구매 협상력을 극대화하여 도입 단가를 낮추는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동절기 기습 한파나 지정학적 위기로 인해 급격한 수요 변동이 발생했을 때, 양국 간 영해를 가로지르는 신속한 LNG 물량 융통은 에너지 안보의 핵심 보루가 될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양국의 가스 저장 시설과 수송선단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민관 협력 체계가 구축된다면, 단기적 수급 불안정에 대응하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수소·암모니아 신에너지 동맹으로의 확장

양국의 에너지 동맹은 전통적인 화석연료를 넘어 미래 에너지인 수소와 암모니아 분야로 확장되는 추세다. 한국과 일본 모두 '2050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국내 재생에너지 잠재량의 한계로 인해 해외에서 청정 수소를 수입해야 하는 처지다. 대규모 수소 공급망 구축에는 천문학적인 인프라 투자 비용이 소요되므로, 양국이 공동으로 해외 생산 기지를 개발하고 운송 표준을 제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실제로 한일 양국 정부와 주요 기업들은 글로벌 수소·암모니아 공급망 공동 구축을 위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별 국가의 탄소 감축을 넘어, 아시아 역내 청정 에너지 허브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기술력을 갖춘 한국의 모빌리티·연료전지 산업과 일본의 수소 원천 기술 및 글로벌 네트워크가 결합할 경우 강력한 시너지가 기대된다.

지정학적 변동성과 제도적 한계 극복이 과제

그러나 이러한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한일 에너지 동맹이 극복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양국 관계의 가변성이다. 과거사 문제나 정권 교체에 따라 외교 관계가 급랭할 경우, 고도의 신뢰가 요구되는 에너지 안보 협력이 한순간에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에너지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민감한 영역인 만큼,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필수적이다.

또한 유럽과 달리 한국과 일본은 전력망이나 가스 배관망이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계통의 섬'이다. 위기 상황 시 즉각적인 에너지 융통을 위해서는 고도의 물류·수송 협조 체계가 상시 작동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정부 간 협정과 민간 계약 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 단순한 업무협약(MOU) 수준을 넘어 법적 구속력을 갖춘 조약이나 상설 협의 기구 설치가 요구되는 이유다.

결국 한일 에너지 동맹의 성공 여부는 단기적 경제성 평가를 넘어 장기적 안보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글로벌 자원 공급망이 파편화되는 다극화 시대에 양국의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다. 정부와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동맹의 틀을 짜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