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기게스의 반지'는 소유자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도덕적 고삐를 풀어버린다. 오늘날 우리 손안의 스마트폰은 현대판 기게스의 반지다. 액정 화면이라는 투명한 장막 뒤에서 벌어지는 언어의 난도질은, 보이지 않는 칼날이 되어 타인의 영혼을 베어낸다. 이 은밀한 폭력, 즉 사이버 불링은 더 이상 가상의 소란이 아닌 현실의 피비린내 나는 참극으로 우리 일상을 잠식하고 있다.
수치는 이미 경고등을 켠 지 오래다. 최근 정부 기관이 발표한 '2025년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2026년 3월 발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42.3%, 성인의 15.8%가 사이버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열 명 중 네 명이 랜선 너머의 폭력에 신음하고 있으며, 성인들 역시 이 잔인한 디지털 유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서글픈 방증이다. 가상 세계의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상처의 깊이가 너무 깊고 푸르다.
이 비극의 중심에는 익명성이라는 방패를 쥐여주고 관객을 모으는 플랫폼 기업들이 있다. 오늘날의 디지털 광장은 로마의 콜로세움을 닮았다. 군중은 가면을 쓴 채 검투사들의 피 흘리는 싸움을 즐기고, 플랫폼은 그 광장의 입장료와 광고 수익을 챙기며 번성한다. 자극적인 혐오와 분노가 트래픽을 유도하고, 그것이 곧 돈이 되는 알고리즘의 생태계 속에서 사이버 불링은 일종의 고수익 상품으로 묵인되어 왔다.
물론 일각에서는 플랫폼에 대한 규제 강화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검열의 시대를 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적 영역의 자율 규제와 이용자들의 집단지성에 정화를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사유화된 디지털 영토에서, 자율이라는 이름의 방임은 결국 강자의 폭력만을 정당화했을 뿐이다. 이윤을 좇는 알고리즘이 혐오를 퍼뜨릴 때, 플랫폼의 침묵은 방관을 넘어 공범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플랫폼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공간의 설계자'다. 자신이 설계한 공간에서 무차별적인 인격 살인이 일어난다면, 설계자 역시 무거운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고 모니터링 의무를 강화하는 등 실효성 있는 법적 고삐를 죄어야 하는 이유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것은 과도한 규제가 아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며 쌓아 올린 조회수의 성은 결국 모래성에 불과하다. 디지털 광장의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늑대가 아닌 인간이어야 한다. 가면을 벗어던진 광장에 비로소 따뜻한 아침 볕이 들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