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무대처럼 쓸쓸한 적막이 흐르는 곳. 오늘날 우리 선거판을 바라보는 유권자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 무대 위 배우들은 화려한 조명 아래서 거대한 이념과 정쟁의 칼춤을 추지만,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정작 자신들의 삶을 바꿀 따뜻한 온기 한 줌을 느끼지 못한다. 표를 구걸할 때만 '주인'이라 불리고, 막이 내리면 이내 잊히는 유권자의 소외는 이제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고질적인 풍경이 되었다.

선거철마다 광장을 가득 메우는 것은 민생의 구체적인 한숨이 아니라, 거대 담론과 정권 심판론 같은 거친 구호들이다. 골목길의 가로등을 고치고, 아이들의 안심 통학로를 확보하며, 지역의 작은 도서관을 세우는 일 같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약속들은 중앙 정치의 거센 소용돌이 속으로 맥없이 빨려 들어간다. 거시적인 정치 담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방향타를 잡고 입법의 기틀을 세우는 일 역시 국회의원의 엄연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국회의원이 국가 입법기관이기에 지역의 자잘한 현안보다는 국가적 아젠다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거시적 안목 없는 정치는 골목 대장의 다툼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지역구 의원이라는 존재의 본질은 결국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에 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튼튼한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닌 주민들의 일상이라는 단단한 흙바닥 위에 뿌리를 내려야만 가능한 법이다.

이러한 괴리는 결국 차가운 숫자로 증명된다. 관련 기관이 올해 초 발표한 평가 결과에 따르면, 제21대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공약 완료율은 고작 51.83%에 머물렀다. 당선을 위해 내걸었던 수많은 약속 중 절반 가까이가 허공으로 흩어진 셈이다. 선거판을 뜨겁게 달구었던 화려한 공약들이 실상은 표를 얻기 위한 일회성 소모품이었음을 보여주는 뼈아픈 방증이다.

동양의 고전에서는 이를 두고 '화이부실(華而不實)'이라 했다. 꽃은 화려하게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뜻이다. 정치가 유권자의 삶이라는 대지에서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하고, 오직 여의도라는 인공 정원 안에서 자기들만의 꽃을 피우려 하니 열매가 맺힐 리 만무하다. 지역 주민의 실생활과 밀착된 공약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상대 진영을 향한 증오와 배제의 언어만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지만, 그 꽃을 피우는 물과 햇빛은 결국 유권자의 평범한 일상이다. 정치가 다시금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거대한 정쟁의 안개를 걷어내고, 골목길 어귀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의 소박한 바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봄이 오면 들판의 작은 풀꽃들이 먼저 고개를 내밀듯, 진짜 정치는 거창한 광장이 아닌 우리 삶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다음 선거에서는 부디, 무대 위의 배우들이 아닌 객석의 관객들이 주인공이 되는 따뜻한 연극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