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저녁, 경북의 한 중소도시 청년 창업 공간. 퇴근길 청년 10여 명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주제는 거창한 국가 거시경제 정책이 아닌, '우리 동네에 왜 청년 주거 지원관이 없는가'였다. 이곳에서 만난 대학생 최모(24) 씨는 "선거철마다 일자리를 수만 개 만들겠다는 공약은 넘쳐나지만, 정작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집 한 칸, 마음을 터놓을 커뮤니티 하나 찾기 어렵다"며 한숨을 쉬었다.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는 단순히 '일자리가 없어서'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최근 치러진 선거에서 청년 세대의 사전투표율이 눈에 띄게 높아진 것은 이들이 더 이상 지역 정치의 변두리에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밀착형 지방자치'를 갈망하고 있다. 단순히 인구 유입을 위한 구호성 정책이 아니라, 청년들이 실제로 정착하고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 달라는 요구다.
일자리와 주거의 미스매치, '살고 싶은 지역'의 조건
그동안 지방자치단체들이 내놓은 청년 정책은 대기업 유치나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 등 하드웨어 중심에 치우쳐 있었다. 그러나 청년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일자리가 생겨도 정주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청년들은 결국 수도권으로 발길을 돌린다. 주거 불안정과 문화·의료 인프라의 부족은 지역 정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일자리와 주거 정책의 '미스매치'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지역 정책 연구원은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일자리 개수가 아니라, 적정 소득을 보장받으면서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거 환경과 삶의 질을 보장하는 소프트웨어적 인프라"라고 분석했다. 지역 맞춤형 청년 주택 공급과 보증금 지원 등 실질적인 주거 사다리가 복합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희망공약'으로 표출된 청년들의 실천적 요구
이러한 청년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외침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정책 제안 운동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지난 2026년 4월 23일 협약을 맺고, 청년 주거·일자리·마음건강 등이 포함된 '민선 9기 46대 희망공약'을 지방선거 출마자들에게 제안하는 실천약속 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이는 청년들이 직접 자신들의 삶에 필요한 정책을 디자인하고 정치권의 약속을 받아내는 능동적 참여의 흐름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 희망공약에 '마음건강'이 주요 화두로 포함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경쟁 사회 속에서 고립감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청년들을 위해 지역사회가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요구다. 취업난과 주거 불안 속에서 청년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을 지방자치의 영역에서 보듬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방자치의 역할이 시혜적 복지를 넘어 삶의 질 전반을 케어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함을 시사한다.
'탑다운' 아닌 '바텀업' 자치로의 패러다임 전환
결국 청년 유권자가 바라는 지방자치의 핵심은 '내 삶을 바꾸는 효능감'이다. 중앙정부의 정책을 단순히 전달하고 집행하는 대리인 역할에서 벗어나,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독창적인 청년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자치 분권이 실현되어야 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탑다운(Top-down)'식 개발 논리로는 더 이상 청년들의 마음을 잡을 수 없다.
지역 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을 정책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정치권이 청년들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요구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지역 지도가 달라질 전망이다. 청년이 머무는 지역이 곧 미래가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제는 정책으로 증명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