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의의 전당이어야 할 국회가 제 기능을 잃고 모든 갈등을 법원으로 끌고 가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여야가 타협과 조율이라는 의정 활동의 본령을 팽개친 채, 사법부의 판단 뒤로 숨는 무책임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에 종속되는 현상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며, 이제는 그 파국적 결과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직시해야 할 때다.
이미 우리 정치가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사법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갈등을 사법 영역으로 넘겨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정치가 사법의 영역을 침범하고, 사법이 정치적 결정을 대체하는 비정상적인 구조는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가 남긴 첫 번째 경고는 '의회 정치의 실종'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최선의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그러나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법원의 판결에만 매달리는 행태는 정치를 '모 아니면 도' 식의 사법적 단죄 게임으로 변질시킨다. 상호 존중과 양보를 통한 타협의 공간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법적 공방과 진영 간의 극한 대립만 남게 된다.
두 번째 경고는 '사법부의 중립성과 신뢰성 훼손'이다. 정치적 논쟁이 법원으로 넘어갈 때마다 사법부는 원치 않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판결의 결과에 따라 한쪽 진영으로부터 거센 비난과 압박을 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사법부의 독립성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사법부마저 정치화된다면 사회의 마지막 보루인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 경고는 '민생과 국가적 과제의 방치'다. 정치권이 사법적 공방에 매몰되어 있는 동안, 정작 국회가 해결해야 할 민생 법안과 국가적 미래 전략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과 인구 소멸 등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정치의 공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해결되지 못한 갈등의 비용은 사회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이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여야는 사법부의 권위에 기대어 상대방을 타도하려는 정쟁을 멈추고, 의회 정치 본연의 역할인 대화와 타협의 테이블로 돌아와야 한다. 사법부 역시 정치적 갈등에 대해 엄격한 사법 자제의 원칙을 지키며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본연의 자세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정치가 제 자리를 찾고 사법이 제 경계를 지킬 때, 비로소 우리 민주주의는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