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꽃이 한꺼번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날의 정원을 동양 고전에서는 '백화제방(百花齊放)'이라 불렀다. 장미의 화려함과 들꽃의 소박함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제 빛깔을 낼 때 비로소 대지는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문화 지도는 단 하나의 거대한 붉은 장미만을 강요하는 외줄 타기와 같다. 모든 인재와 자본, 그리고 영혼의 허기를 달래줄 문화적 세례가 '서울'이라는 거대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 극장과 미술관이 문을 닫고 청년들이 문화적 갈증을 이기지 못해 고향을 떠나는 현실은, 우리가 가장 소중한 삶의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서글픈 징표다.
수치로 마주하는 현실은 더욱 차갑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2025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올해 기준 전국의 문화기반시설 3,337개 가운데 무려 36.9%에 달하는 1,231개가 수도권에 촘촘히 밀집해 있다. 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공간에 전국의 문화적 자양분 세 개 중 하나 이상이 고여 있는 셈이다. 이 거대한 비대칭 속에서 지방의 시민들은 예술을 향유할 당연한 권리로부터 소외되고,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서사는 박제된 유물처럼 잊혀가고 있다. 문화의 일극화는 단순히 볼거리의 격차를 넘어, 삶의 질과 품격의 격차로 이어지며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되었다.
물론 시장의 논리와 효율성을 앞세우는 이들은 다른 목소리를 낸다. 인구가 밀집하고 수요가 집중된 수도권에 대규모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재정 투입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는 합리적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관객이 찾지 않는 지방의 미술관과 공연장은 결국 세금 낭비로 이어지는 '하얀 코끼리(돈만 많이 들고 쓸모없는 애물단지)'가 될 뿐이라는 냉소도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명제는 일견 타당해 보이며, 비어 있는 지방 문화시설의 적자 운영 역시 가볍게 넘길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문화는 경제적 효율의 자로만 잴 수 없는 영혼의 영역이자, 한 공동체의 생존이 걸린 공공재다. 문화적 결핍은 지역 청년들에게 고립감과 박탈감을 심어주며, 이는 결국 '탈(脫)지방'이라는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문화 인프라를 단순한 소비 시설로 바라보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화는 사람이 머물고, 교류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지역 생태계의 '심장'이다. 심장이 멈춘 몸에 피가 돌 리 없듯이, 문화적 온기가 사라진 도시에 청년과 기업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가깝다.
이제는 서울의 화려함을 모방하는 '아류(亞流)의 길'을 버리고, 지역 고유의 서사와 정체성을 극대화하는 '로컬 아카이브'에 주목해야 한다. 스페인의 쇠락해가던 공업도시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로 세계적인 문화 도시로 거듭났듯, 우리 지방 도시들도 저마다의 역사와 자연, 공동체의 기억을 예술적 품격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남도의 깊은 소리와 동해의 거친 파도, 안동의 유교적 깊이와 부산의 역동성은 서울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문화 자산이다. 이러한 고유성이 현대적 예술 감각과 결합할 때, 지방은 비로소 스스로 빛나는 태양이 될 수 있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지만, 결국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는 여정"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유기체가 건강하게 숨 쉬기 위해서는 서울이라는 심장 외에도 온몸의 모세혈관으로 문화의 온기가 골고루 퍼져 나가야 한다. 봄은 언제나 따뜻한 남쪽에서부터 꽃소식을 싣고 올라온다. 이 땅의 문화적 품격 역시 서울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변방의 거친 흙 속에서 피어나는 다채로운 꽃들을 통해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