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수출 전선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서민 경제의 근간인 골목상권은 유례없는 한파를 맞이하고 있다. 거시경제 지표의 온기가 미시경제로 흘러가지 않는 이른바 '수출·내수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심화하는 양상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개인과 법인을 포함해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는 100만 8,282명으로 집계되며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 선을 넘어섰다. 이는 수출 호조라는 화려한 외양 뒤에 가려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깊은 그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수출 독주와 내수 침체의 극단적 괴리

최근 우리 경제는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수요가 살아나며 무역수지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출 성장의 과실이 가계 소득 증대나 국내 소비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단절이 발생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수출 주도 산업의 변화에 있다. 과거와 달리 현재 수출을 견인하는 반도체, 석유화학 등은 자본집약적 장치산업의 성격이 강해 고용 유발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다. 대기업의 실적 개선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가계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낙수효과'가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된 것이다.

여기에 고금리와 고물가의 장기화가 내수 위축을 부채질했다. 가계의 실질 처분가능소득이 감소하면서 의류, 외식 등 선택재 소비부터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 이는 고스란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매출 타격으로 이어졌고, 결국 한계 상황에 직면한 이들의 무더기 폐업이라는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자영업 비중의 구조적 한계와 부채의 덫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약점인 높은 자영업 비중도 위기를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자영업자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지난 몇 년간 누적된 대출의 상환 주기와 고금리 기조가 맞물렸다. 자영업자들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가중되면서 소비 여력은 더욱 고착화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수출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동안, 자영업자들은 누적된 부채와 매출 감소라는 이중고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양극화는 단순히 특정 계층의 불황을 넘어, 내수 기반 자체를 붕괴시켜 장기적으로 경제 전반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깊다. 내수가 뒷받침되지 않는 수출 외바퀴 성장은 대외 변동성에 극도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체질 개선과 맞춤형 지원 패키지 병행해야

디커플링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금융 처방과 중장기적 구조조정을 병행하는 입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금융 취약계층으로 전락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해 채무 조정 및 대환대출 지원을 실효성 있게 확대해야 한다. 일시적 유동성 위기로 우량한 자영업자가 도산하는 것을 막는 방어막이 시급하다.

동시에 과밀화된 자영업 구조를 재편하는 체질 개선이 필수적이다. 경쟁력을 잃은 자영업자들이 임금근로자로 원활하게 전환할 수 있도록 재취업 교육과 고용 매칭 서비스를 고도화해야 한다. 아울러 수출 대기업의 낙수효과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내수 진작을 위해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고 내수 활성화 대책의 타깃을 서민층의 실질 소득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밀 타격해야 한다. 거시적 지표의 착시에서 벗어나 골목길 경제의 온기를 되살리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