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울창한 숲이 사계절 내내 푸르름을 잃지 않는 비결은 고목(古木)과 신목(新木)의 조화로운 공존에 있다.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린 고목이 거센 바람을 막아주고, 그 그늘 아래서 자라난 어린 나무들이 새로운 가지를 뻗어 올릴 때 숲은 비로소 영속성을 얻는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노동의 숲은 고목의 생존과 신목의 성장이 서로를 위협하는 위태로운 불균형의 기로에 서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뜨겁게 달아오른 '정년 연장' 논의가 바로 그 폭풍의 핵이다.
은퇴의 문턱을 늦추자는 주장은 인구 절벽 시대에 노동력 감소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처럼 보인다. 장년층의 숙련된 경험과 지혜를 사장(死藏)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는 지적도 타당하다. 하지만 이 온당해 보이는 명제가 현실의 노동시장에 그대로 대입될 때, 우리는 청년들의 일자리가 잠식당하는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기성세대의 고용 연장이 청년세대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부메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깊어지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장년층과 청년층의 직무가 서로 겹치지 않아 고용 갈등이 기우에 불과하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는 한국 노동시장의 고질적인 병폐인 '연공급(호봉제) 임금체계'의 파괴력을 간과한 안이한 진단이다. 일의 가치나 생산성과 무관하게 근속연수만 쌓이면 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는 구조 속에서, 고령 인력의 정년 연장은 기업에 감당하기 힘든 비용 부담을 지운다. 한정된 재원 속에서 장년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청년의 문을 닫아걸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엄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우려는 수치로도 명백히 드러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2025년 7월에 실시한 청년 고용 관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대다수가 생산성과 무관하게 임금이 오르는 현행 연공급 임금체계의 개편이 시급하다고 답했다. 이는 정년 연장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단순히 근로 기간의 연장에 그쳐서는 안 되며, 반드시 노동시장의 본질적인 체질 개선과 맞물려야 함을 웅변하는 대목이다.
결국 해법은 '직무급제'로의 과감한 대전환에 있다. 나이가 아닌 '하는 일의 가치와 성과'에 따라 보상받는 직무 중심의 임금체계가 확립될 때, 비로소 기업은 장년층을 고용하는 부담을 덜고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여력을 얻게 된다. 이는 장년에게는 품격 있는 노동의 지속을, 청년에게는 공정한 기회의 영토를 넓혀주는 세대 상생의 유일한 이정표다.
동양의 고전 《주역(周易)》은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라 했다. 막히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는 뜻이다. 낡은 연공의 끈을 과감히 끊어내고 직무와 성과라는 새로운 가치로 노동의 틀을 바꿀 때, 정년 연장은 세대 갈등의 불씨가 아닌 공존의 축복이 될 수 있다. 청년의 푸른 활력과 장년의 묵직한 경륜이 같은 대지 위에서 서로의 숨결을 북돋우는 날, 비로소 대한민국의 노동이라는 거대한 숲은 시들지 않는 생명력을 이어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