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00만 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의료보험의 청구 전산화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4년 10월 25일 병원급 의료기관과 보건소를 대상으로 한 1단계 서비스가 시행된 데 이어, 오는 2025년 10월 25일부터는 동네 의원과 약국까지 확대되는 2단계 시행을 앞두고 있다. 번거로운 종이 서류 발급 없이 터치 몇 번으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게 된 변화는 가입자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디지털 전환의 이면에는 개인의 민감한 의료 정보 유출 우려와 고령층의 디지털 소외라는 무시할 수 없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편리함 속에 감춰진 민감 정보 유출의 리스크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의료 정보의 보안성이다. 기존에는 가입자가 직접 병원에서 종이 서류를 발급받아서 보험사에 제출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정보의 이동 경로가 비교적 명확하고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전산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환자의 진료 내역, 처방 조제 정보 등 극히 민감한 개인 정보가 전자적 형태로 병원, 중개기관, 보험사 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의료계와 시민단체 등 일각에서는 이 과정에서 해킹이나 시스템 오류로 인한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금융 정보와 달리 의료 정보는 한 번 유출되면 대체가 불가능하며, 개인의 질병 이력이 원치 않게 공개될 경우 고용이나 보험 재가입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치명적인 성격을 지닌다. 보안 전문가들은 전송 대행기관의 보안 표준을 강화하고, 정보 유출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정하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종이 없는 사회'의 역설, 디지털 소외 계층의 그늘

또 다른 문제는 고령층을 비롯한 디지털 취약계층의 소외 현상이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기본적으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키오스크 등 디지털 기기 활용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통계청 및 관련 기관의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의 70% 안팎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실손보험 가입자 중 질병 발생 빈도가 높아 보험금 청구 수요가 가장 많은 세대는 역설적이게도 60대 이상의 고령층이다. 모바일 앱 조작이 서툰 고령층 환자들에게 '종이 없는 청구'는 오히려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될 수 있다. 결국 병원 창구에서 대면으로 서류를 발급받던 기존 방식이 점차 축소되거나 사라질 경우,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정당한 보험 혜택에서 배제되는 '디지털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속 가능한 제도를 위한 보완책 마련 시급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진정한 국민 편의 제도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편리함을 넘어 포용적이고 안전한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고령층을 위해 병원 내 전담 안내 인력을 배치하거나, 보호자가 대리 청구할 수 있는 간소화된 절차를 폭넓게 허용하는 등 오프라인 보완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모든 가입자가 차별 없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하이브리드형'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2025년 10월로 예정된 의원 및 약국 대상의 2단계 확대를 앞두고, 보안 가이드라인의 철저한 준수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영세한 의원급 의료기관과 약국의 경우 대형 병원에 비해 보안 시스템이 취약할 수 있으므로, 정부 차원의 기술적·재정적 지원 방안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기술의 진보가 누군가에게는 소외의 시작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편리함이 안전을 담보로 삼지 않도록 촘촘한 보완책을 다듬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