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미국과 중국 기술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 기술 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포괄적인 패키지 법안을 발표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9일(현지시간) 역내 반도체,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의 경쟁력을 키우고 외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새로운 규제안을 제안했다. 이 법안은 27개 회원국의 승인을 거쳐야 효력이 발생한다.
주요 내용은 반도체·AI·클라우드 분야 경쟁력 강화
이번에 제안된 법안에는 첨단 반도체 생산 역량 강화와 유럽 자체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육성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이 포함되었다. 집행위원회는 특히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공공 기관의 클라우드 컴퓨팅 주권 확보를 위한 EU 차원의 프레임워크를 설정하는 내용의 '클라우드 및 AI 개발법(CADA)'을 도입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EU는 제3국 클라우드 서비스 의존으로 발생하는 위험을 완화하고자 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집행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병원 운영, 에너지망 안정, 서비스 보안에 필수적인 기술을 타국에 의존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헤나 비르쿠넨(Henna Virkkunen) 집행부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클라우드 제공업체가 "킬 스위치(kill switch)"를 갖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특히 미국 클라우드법(U.S. Cloud Act)으로 인해 미국 기업이 데이터 저장 위치에 관계없이 미국 법 집행기관의 데이터 요청에 응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EU 역내에서 민감 데이터가 저장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와 함께 유럽의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기 위한 '칩스법 2.0(Chips Act 2.0)'도 발표되었다. 이는 앞서 발표된 칩스법의 후속 조치로, 반도체 공급망 확보와 EU의 시장 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한다. 칩스법 2.0은 칩 설계 및 제조 분야에서 제3국 의존도를 낮추고 위기 상황에 대한 대비 태세를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둘 예정이다. EU는 특히 AI 구동에 필수적인 첨단 반도체 기술 역량을 구축하고, 역내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한 파운드리 구축을 우선 과제로 삼을 방침이다.
다만, 토니 블레어 연구소(Tony Blair Institute for Global Change)의 키건 맥브라이드(Keegan McBride)는 "이번 패키지가 중요한 발걸음이지만, 유럽 우선주의 기술 접근 방식으로 완전히 회귀할 경우 오히려 대륙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강대국은 기술을 국내에서 사용하는 것을 넘어 전 세계에 구축하고 수출할 수 있는 글로벌 야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