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곽, 산자락 아래 펼쳐진 짙은 녹지대. 수십 년간 개발의 손길을 막아온 그 완충지대가 지금 다시 허물어지고 있다. 2024년 8월, 정부는 수도권 그린벨트를 해제해 8만 호 규모의 신규 택지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른바 '8·8 주택공급 확대방안'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수십 년 만에 가장 대규모의 그린벨트 해제 조치다.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본지는 이 방식이 진단은 맞되 처방은 그르다고 판단한다.
첫째, 그린벨트 해제는 효과가 불확실한 데 반해 훼손은 돌이킬 수 없다. 과거 수차례의 대규모 택지 공급이 수도권 집값을 장기적으로 안정시켰다는 증거는 없다. 공급이 늘면 수요도 따라 이동하는 구조가 반복됐다. 반면 한 번 포클레인이 들어간 녹지는 되살아나지 않는다. 도시 열섬 현상 완화, 미세먼지 차단, 홍수 조절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그린벨트를 아파트 단지로 교체하는 비용은 입주자 분양가에 절대 포함되지 않는다. 그 비용은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이 치른다.
둘째, 공급의 방향이 잘못됐다. 수도권 집중은 택지 부족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다. 서울과 그 인근에 일자리·교육·의료가 집중되는 한, 어디에 아파트를 지어도 수요는 그 방향으로 쏠린다. 실제로 수도권 내 미분양 단지와 나홀로 아파트가 동시에 존재하는 현실은, 절대적 공급량 부족보다 입지 미스매치가 더 큰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린벨트를 허물어 새 땅을 만드는 것은, 수도권 집중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
셋째, 절차의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정책 신뢰는 무너진다. 어느 지역 그린벨트를 해제할 것인가는 토지 가치와 직결되는 문제다. 선정 기준이 불투명할 경우 정보 비대칭에 따른 선점 거래가 일어나고, 결국 그 이익은 실수요자가 아닌 자본력 있는 투자자에게 귀속된다. 공공 목적의 해제가 사적 수익의 통로로 변질되는 경로는, 우리가 이미 여러 번 목격한 바 있다.
본지는 주택 공급 확대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도심 내 노후 건축물의 고밀 재개발, 역세권 용적률 상향, 빈 상업지구의 주거 전환 등 그린벨트에 손대지 않고도 가능한 공급 경로는 여전히 충분히 남아 있다. 정부가 이 경로들을 충분히 소진하기 전에 가장 되돌리기 어려운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속도를 위해 원칙을 버린 선택이다.
그린벨트는 현 세대가 보유한 자산이 아니다.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유산이다. 8만 호의 주택은 20년 뒤 낡겠지만, 그 자리에 있었어야 할 숲은 200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정부는 지금의 집값 불안을 미래의 환경 부채로 갚으려 하고 있다. 그 청구서는 표결도, 항의도 할 수 없는 세대에게 날아간다.
당장의 공급 압박이 거세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위기일수록 후퇴선은 지켜야 한다. 그린벨트가 바로 그 선이다. 정부는 해제 대상지의 선정 기준과 환경 영향 평가 결과를 완전히 공개하고, 대체 녹지 확보 계획을 선행 조건으로 제시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일수록, 결정 과정은 더 느리고 더 투명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