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봉지를 열었더니 내용물이 예전보다 적다. 가격표는 그대로다. 착각인가 싶어 넘어가지만, 착각이 아니다. 한국소비자원이 2024년 4분기 실시한 슈링크플레이션 실태조사에서 국내외 식품 9개 품목의 용량 감소가 확인됐다. 이 중 6개 상품은 용량을 줄이면서도 소비자에게 아무런 고지를 하지 않았다. 가격 인상이라는 말 대신 용량 축소라는 수단을 택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가격 인상, 왜 반복되나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은 'shrink(줄이다)'와 'inflation(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기업이 가격을 유지하면서 제품 용량이나 중량을 줄여 사실상의 가격 인상 효과를 거두는 방식이다. 원재료비·인건비·물류비 상승이라는 비용 압박 속에서 소비자 저항을 최소화하려는 선택이다.
문제는 이 방식이 소비자가 감지하기 극도로 어렵다는 데 있다. 마케팅 리서치 기관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1.3%가 「기업의 용량 꼼수를 소비자가 알아채기 어렵다」고 답했다. 더 주목할 수치는 그다음이다. 67.8%는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응답했다. 인식은 있지만 대응 수단이 없다는 뜻이다. 정보 비대칭과 소비자 무력감이 동시에 확인된 셈이다.
제도는 생겼다, 그런데 과태료 500만 원으로 충분한가
공정거래위원회는 2024년 5월 고시를 개정해 가공식품 80개, 생활용품 39개 등 총 119개 품목을 대상으로 용량 변경 시 소비자 고지를 의무화했다. 이를 어기면 1차 위반 시 500만 원, 2차 위반 시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공정위는 당시 「제조사와 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소비자들이 온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 소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개정 취지를 밝혔다.
선언적 의미는 분명하다. 그러나 과태료 수준이 실질적 억지력을 갖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형 식품기업이 용량 축소로 거두는 비용 절감 효과에 비해 500만 원은 상징적 수준에 그칠 수 있다. 위반 적발 비율이 낮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위반이 '합리적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치킨 업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유권해석을 통해 BHC, BBQ, 교촌 등 10대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1만 2,560곳에 대해 조리 전 총 중량 표시를 의무화하기로 결정했다. 가격과 용량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기준점을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는 취지다. 이는 표시제 의무화가 특정 업종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표시제, 얼마나 넓고 얼마나 강하게 적용하느냐가 핵심
기획재정부·공정위·식약처 등 관계부처는 2025년 12월 합동 발표를 통해 슈링크플레이션을 「가격이 오르지 않은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이자 실질적 물가 인상을 초래해 민생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규정했다. 정부가 이를 단순한 기업 관행이 아닌 소비자 기만이자 물가 교란 요소로 공식 정의했다는 점은 의미 있는 전환이다.
그러나 현행 제도의 적용 범위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119개 품목 외 수많은 식품과 생활용품은 의무 고지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포장 디자인을 바꾸거나 제품 라인을 리뉴얼하는 방식으로 용량 변경을 우회하면 현행 규정을 피해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의무 표시 대상 확대, 위반 시 제재 강화, 그리고 유통 단계까지 아우르는 모니터링 체계 구축이 동시에 이뤄지지 않는 한, 표시제는 선언에 그칠 위험이 있다.
소비자가 합리적 선택을 하려면 정확한 정보가 먼저다. 용량이 줄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구매를 결정하는 구조는 시장의 기본 전제인 '정보 대칭'을 무너뜨린다. 제도의 빈틈을 메우는 속도가, 기업이 새로운 우회 방식을 찾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핵심 변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