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스마트폰 화면을 여닫는 횟수가 100회를 훌쩍 넘는다는 조사가 있다. 잠에서 깨기도 전에 알림을 확인하고, 식사 중에도 엄지손가락은 화면 위를 미끄러진다. 우리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옆에 앉은 사람의 목소리는 잘 듣지 못한다.
2023년 8월,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출연자 한 명이 스마트폰 없이 하루를 보내는 실험을 했다. 시청자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웃음보다 공감이 먼저 터졌다. 알림이 없는 시간, 답장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오후, 그 낯선 고요함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멈췄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기로부터 '타임아웃'이 필요하며, 사람과의 대화에 집중하고 종이책을 읽는 습관이 마음의 근육을 되살린다고. 그런데 우리는 왜 이토록 단순한 처방을 실천하기가 어려운가.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에서 '투명사회'를 경고했다. 모든 것이 드러나고, 모든 감정이 공유되고, 모든 시간이 기록되는 세계. 그 세계에서 인간은 역설적으로 가장 외롭다. 연결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관계의 깊이는 얕아진다. 수백 명의 팔로워가 내 사진에 하트를 누르지만, 새벽 세 시에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힌다.
물론 반론도 있다. 디지털 연결이 외로움을 해소한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지방에 사는 노인이 스마트폰으로 손자 얼굴을 보고, 해외에 나간 친구와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것이 어찌 의미 없다 하겠는가. 기술은 본래 중립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기술에 삼켜지는 방식이다.
자발적 고립은 단절이 아니다.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을 보낸 것은 세상을 혐오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삶의 정수만을 빨아들이고 싶었다」고 그는 썼다. 디지털 디톡스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잠시 강둑에 올라, 자신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직장에서 카카오톡 답장이 늦으면 눈총을 받고, SNS에 며칠 잠적하면 안부 전화가 온다. 고립은 용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 용기를 낸 사람들의 공통된 증언은 흥미롭다. 화면 밖의 시간이 늘자 대화가 깊어졌고, 지루함을 견디는 힘이 생겼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관계의 질은 연결의 양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천 개의 알림보다 한 번의 눈 맞춤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침묵을 함께 견딜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곁에 있는 사람이다.
스마트폰을 서랍에 넣고, 창밖을 바라보라. 그 몇 분이 당신에게 낯설다면, 이미 충분히 오래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