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 한 귀퉁이에서 시작된 불길이 수백 대의 차량을 삼켰다. 2024년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사고는 단순한 사건을 넘어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이후 전국 아파트 단지에서 전기차 충전 금지 공고가 붙기 시작했고, 일부 입주민 커뮤니티에서는 전기차 주차 자체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번졌다. '전기차 포비아'라는 신조어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도 이즈음이다.

그런데 2025년 국내 전기차 신규 등록 대수가 22만 대를 넘어서며 2년간 이어진 역성장 국면이 마침내 반등으로 전환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발표가 그 근거다. 공포가 극에 달했던 시장이, 수치상으로는 오히려 회복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 간극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화재 위험, 내연기관과 비교하면

전기차 화재에 대한 공포는 감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배터리 열폭주 현상은 한번 시작되면 진화가 어렵고, 유독 가스 발생과 재점화 가능성이 내연기관 차량과는 다른 위험 양상을 보인다. 문제는 이 '다름'이 '더 위험함'으로 곧바로 등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전기차 1만 대당 화재 발생 건수는 내연기관차보다 낮은 수준으로 집계된다. 국내외 복수의 조사에서도 전기차의 절대적 화재 발생률은 가솔린차를 밑돈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전기차 화재가 더 크게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하 밀폐 공간, 진화 시간의 장기화, 그리고 미디어 노출 빈도다. 한 건의 화재가 수백 대를 동시에 위협하는 지하주차장 구조는 피해의 규모를 증폭시켰고, 그 장면이 반복 재생되며 위험 인식을 고정시켰다.

포비아가 시장에 남긴 흔적

공포의 경제적 파급은 실제였다. 2023년과 2024년 연속으로 전기차 신규 등록이 감소하는 이례적인 역성장이 발생했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전기차 라인업 확대 계획을 일부 조정했고, 충전 인프라 투자 심리도 위축됐다. 소비자 설문에서는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지 않는 이유'로 화재 안전성이 가격·충전 인프라와 함께 상위권에 올랐다.

아파트 관리 규약 개정 움직임도 구체적인 시장 변수가 됐다. 일부 단지에서 전기차 지하 충전을 제한하거나 완속 충전만 허용하는 조치가 실제로 시행됐고, 이는 전기차의 핵심 편의인 '집에서 충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구매를 망설이는 소비자에게 이보다 강한 이탈 신호는 없다.

반등의 이유, 그리고 남은 과제

그렇다면 2025년 22만 대 돌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포비아가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가격 하락, 보조금 정책 지속, 신모델 출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공포를 일부 상쇄한 결과로 분석된다. 정부가 전기차 화재 대응 매뉴얼을 강화하고 지하주차장 소화 설비 기준을 상향한 것도 소비자 불안을 낮추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반등이 곧 신뢰 회복을 뜻하진 않는다. 전기차 배터리 이력 공개 의무화, 충전 중 화재 감지 시스템 표준화, 지하주차장 안전 기준 재설계 등 구조적 과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공포는 사실보다 빠르게 퍼지지만, 신뢰는 데이터보다 경험이 쌓여야 돌아온다. 22만 대라는 숫자가 진짜 반등이 되려면, 그 차들이 아무 사고 없이 도로를 달리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