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려가구 600만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관련 금융연구소의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국내 반려가구는 약 591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약 25% 내외를 차지하며, 반려인구는 약 1,500만 명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 뒤에는 가계 경제를 위협하는 '반려동물 의료비 부담'이라는 무거운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키우던 반려동물이 아플 때 발생하는 수백만 원대의 치료비는 반려가구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잠재적인 반려동물 유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기준 없는 진료비, 가계 부담 가중하는 구조적 원인
현재 국내 반려동물 의료비가 이토록 부담스러운 가장 큰 원인은 '진료비 편차'와 '표준화된 기준의 부재'에 있다. 사람의 의료 체계와 달리 반려동물 진료는 비급여 항목이 대부분이며, 병원마다 진료비 책정 기준이 제각각이다. 동일한 검사나 수술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따라 수 배에서 수십 배까지 비용 차이가 발생하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정부가 일부 다빈도 진료 항목에 대해 게시제를 도입하는 등 투명성 제고에 나섰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효과는 미미하다. 질병명이나 치료 행위의 명칭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소비자가 여러 병원의 가격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의료 소비자인 반려인들의 정보 비대칭성을 심화시키고 의료비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낮은 펫보험 가입률과 활성화의 걸림돌
이러한 고비용 구조를 완화할 대안으로 '반려동물 보험(펫보험)'이 거론되지만, 국내 펫보험 가입률은 여전히 1%대 안팎의 극히 저조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영국의 가입률이 25%를 상회하고 스웨덴이 40%를 넘어서는 등 펫보험이 보편화된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이는 보험사와 수의업계, 그리고 소비자 간의 신뢰와 인프라 부족에서 기인한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표준화된 진료 데이터가 부족해 적정 요율을 산정하기 어렵고, 이는 높은 보험료와 좁은 보장 범위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소비자들은 매달 지불하는 보험료에 비해 실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범위가 좁다고 판단해 가입을 기피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가입률 저하가 상품 다양성 부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고착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표준수가제 도입과 인프라 구축이 가져올 미래
따라서 1,500만 반려가구의 실질적인 의료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는 '동물병원 표준수가제'의 단계적 도입과 '펫보험 활성화'라는 두 가지 축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표준 진료 코드 체계를 확립해 진료의 투명성을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보험사들이 합리적인 보험료의 맞춤형 상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더불어 진료비 청구 간소화 시스템 구축과 세제 혜택 등 정책적 지원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반려동물을 단순한 '소유물'이 아닌 '가족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만큼, 제도적 인프라 역시 이에 발맞춰 진화해야 한다. 의료비 부담 완화는 반려가구의 삶의 질 향상뿐만 아니라, 유기동물 예방과 동물 복지 증진이라는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로도 이어질 것이다.
반려동물 의료비 문제는 더 이상 개별 가구의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선 안 된다. 1,500만 반려인이 겪는 경제적 고통을 덜어주고 지속 가능한 반려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수의계, 보험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구조적 개혁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