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서울의 한 초등학교. 수업 종이 울렸지만 아이들은 교문 밖으로 향하지 않는다. 대신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늘봄교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보드게임을 하거나 창의 미술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 있다. 학부모 김 모 씨는 "늘봄학교 덕분에 경력 단절 걱정 없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교무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한 교사는 "늘봄학교 도입 이후 행정 업무와 공간 활용을 둘러싼 갈등으로 학교 현장의 피로감이 임계점에 달했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오는 2026년 3월 초등 전 학년으로 늘봄학교 확대를 예고한 가운데, 현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늘봄학교가 단순한 '시간 때우기식 돌봄'을 넘어 학부모가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양질의 교육·돌봄 통합 서비스'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특히 전담 인력 확보와 공간 갈등 해소는 늘봄학교의 성패를 가를 핵심 열쇠로 꼽힌다.
교실은 늘었지만... '공간의 재구성' 둘러싼 갈등과 해법
늘봄학교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공간'이다. 기존 초등돌봄교실과 방과후학교를 통합한 늘봄학교는 더 많은 학생을 수용하기 위해 추가적인 공간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정된 학교 부지 내에서 새로운 교실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일반 교실을 늘봄교실로 겸용하면서 교사들의 연구 공간이 사라지거나, 학생들의 학습 환경이 침해받는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학교 구성원 간의 갈등이 깊어지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학교 공간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학교 유휴 공간을 적극적으로 리모델링하여 '늘봄 전용 복합 공간'을 구축하거나, 지역 사회의 공공시설과 연계한 외부 공간 활용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설계 단계부터 돌봄과 교육이 공존할 수 있는 '미래형 학교 공간'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단순 돌봄' 넘어선 양질의 교육, 전담 인력 전문성이 가른다
공간 못지않게 시급한 과제는 '사람', 즉 전담 인력의 확보와 전문성 강화다. 늘봄학교가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단순한 방치형 돌봄이 아닌,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춘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많은 학교에서는 행정 업무 부담이 기존 교사들에게 전가되거나, 단기 계약직 위주의 강사 채용으로 프로그램의 연속성과 질적 수준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계 관계자들은 늘봄학교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교사와 늘봄 행정 인력을 철저히 분리하는 '투 트랙(Two-Track)' 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 행정 업무 부담을 줄여줄 전담 실무사 배치를 제도화하고, 우수한 외부 강사를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지역 단위의 인력 풀(Pool) 구축이 시급하다. 대학이나 전문 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체육, 예술, AI·디지털 등 다채롭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2026년 전면 시행 앞둔 늘봄학교, 지속 가능한 모델 구축해야
2026년 3월 전면 시행까지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늘봄학교의 성공적인 안착은 단순히 예산을 쏟아붓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간의 긴밀한 협력 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학교에만 모든 부담을 지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자체가 주도하고 학교가 협력하는 '지역 밀착형 늘봄 모델'의 확산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출생 극복과 국가 책임 교육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과제 속에서 늘봄학교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이제는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내실화를 고민해야 할 때다. 정부와 교육 당국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공간과 인력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해 나갈 때 비로소 늘봄학교는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배움터이자 학부모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