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경제 기관들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상향 조정하며 한국 경제의 ‘깜짝 반등’을 예고했다. 그러나 지표상의 화려한 숫자 뒤에는 반도체 등 특정 IT 품목에만 의존하는 외풍 취약성과 얼어붙은 내수 경기라는 깊은 그늘이 자리 잡고 있다. 수출 온기가 민생 경제로 흘러가지 못하는 ‘성장의 착시’ 현상이 심화되면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발표와 경제 기관들의 전망치를 살펴보면 지표상의 반등은 뚜렷하다. 한국은행은 지난 2026년 5월 28일 수정경제전망을 발표하며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2.6%로 0.6%포인트 대폭 상향 조정했다. 이에 앞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5월 13일 전망치를 1.9%에서 2.5%로 올렸고, 산업연구원(KIET) 역시 5월 26일 기존 전망치보다 0.6%포인트 높은 2.5%를 제시했다. 주요 기관들이 이처럼 성장률 눈높이를 일제히 올린 것은 글로벌 IT 경기 회복에 따른 수출 호조가 예상보다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외길에 기댄 독주, 깊어지는 내수와의 디커플링

이번 성장률 상향의 일등 공신은 단연 반도체를 필두로 한 IT 수출이다. 인공지능(AI)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수요 급증이 한국 수출을 견인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성장이 특정 첨단 산업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산업은 자본 집약적 특성이 강해 고용 유발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다. 즉, 반도체 대기업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더라도 일반 서민들이 느끼는 고용 시장이나 소득 증대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차가 존재하거나, 아예 낙수효과가 차단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수출 전선과 달리 민간 소비와 건설 투자는 여전히 한파를 겪고 있다. 고금리와 고물가의 장기화로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저하되면서 골목상권과 자영업자들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소매판매액지수 등 주요 소비 지표는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석유정제업 등 일부 전통 제조업 분야의 생산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출이 아무리 잘 되어도 내수가 받쳐주지 못하는 '성장률의 양극화'가 고착화되고 있는 셈이다.

고금리·고물가 장기화가 부른 민생 경제의 경고음

지표와 체감 경기의 괴리는 서민 경제의 가장 취약한 고리인 자영업과 한계기업에서 가장 먼저 터져 나오고 있다. 대출 금리 부담이 누적된 상황에서 내수 침체까지 겹치자 폐업률이 급증하고 있으며, 금융권의 연체율 또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수출 호조로 인한 낙수효과가 대기업에서 협력업체, 그리고 소상공인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끊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6%라는 성장률 수치가 대다수 국민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 한국 경제는 수출이 살아나면 시차를 두고 내수가 회복되는 구조를 보였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국내 산업 구조의 고도화로 인해 이제는 수출과 내수의 연계 고리가 크게 약화되었다. 해외 현지 생산 비중이 늘어난 데다, 국내 투자가 주로 첨단 장비 도입에 집중되면서 일자리 창출 효과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일시적인 경기 흐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적 체질 변화가 가져온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수치에 취할 때 아니다…체질 개선과 정교한 정책 조율 필요

따라서 현재의 성장률 상향 조정을 한국 경제의 완연한 회복 신호로 오판해서는 안 된다. 착시 효과에 가려진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맞춤형 정책 대응이 요구된다. 고금리로 신음하는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핀셋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구조조정 지연으로 인한 잠재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동시에 반도체 단일 품목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서비스업 활성화와 신산업 육성을 통해 내수 시장의 자생력을 키우는 구조 개혁을 병행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몇 퍼센트 성장했는가'가 아니라 '그 성장의 과실이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가'이다. 수출이 이끄는 외형적 성장에 취해 내수의 기초체력이 고갈되는 것을 방치한다면, 향후 대외 충격이 발생했을 때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정부와 통화 당국은 지표상의 풍요 속에서 빈곤을 느끼는 민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지속 가능한 균형 성장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