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의 한 실버타운 앞. 입구에는 '현재 입주 대기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 시설의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어르신은 수백 명. 평균 대기 기간은 2년을 넘는다. 반면 서울 은평구의 반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사는 78세 김모 씨는 실버타운이라는 단어 자체가 '딴 세상 이야기'다. 월세 35만 원도 빠듯한 그에게 실버타운 입주 비용은 넘볼 수 없는 벽이다.
통계청이 2023년 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전체의 16.5%다. 초고령사회 기준인 20%까지 3.5%포인트가 남았다. 속도가 문제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수요는 이미 달리고 있는데, 공급은 아직 준비 운동 중이다.
수요와 공급의 골이 깊어지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2023년 7월 집계한 실버타운 입주 대기자는 약 3만 명. 숫자만 보면 다소 낮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 신청 절차를 밟은 대기자만 센 것이다. 비용이 두려워 처음부터 문을 두드리지 않은 노인들은 통계 바깥에 있다.
국토교통부는 2022년 3월, 2026년까지 실버타운을 포함한 노인 맞춤형 주거시설 5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공급 속도 자체가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OECD 고령화 보고서(2023년)에 따르면, 초고령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은 실버타운 공급이 10년간 연평균 4% 늘어난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연평균 2.5% 증가에 그쳤다. 출발점도 낮고, 속도도 느리다.
비용도 장벽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실버타운 평균 입주 비용은 월 70만 원으로 전년 대비 8% 올랐다. 70만 원은 평균치다. 서울 강남권 프리미엄 시설은 월 수백만 원을 넘기도 한다.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이 65만 원 안팎임을 감안하면, 연금만으로 실버타운에 들어가는 것은 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취약계층 노인 — 복지 사각지대의 실체
대한노인회는 2023년 11월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김성태 회장은 「실버타운 공급 확대가 시급하지만, 비용 부담과 접근성 문제로 취약계층 노인들은 여전히 주거 불안에 시달린다」고 짚었다. 공급 숫자만 늘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서울시는 2023년 5월 저소득 노인 대상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2022년 대비 15% 늘렸다고 발표했다. 증가 자체는 의미 있다. 그러나 서울시 스스로 「수요 대비 여전히 부족하다」고 인정했다. 15% 늘었어도, 대기 줄이 더 빠르게 길어지고 있다면 숫자는 무색해진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9월 '노인 맞춤형 주거복지 강화 방안'을 내놓으며 취약계층 노인 주거비 지원 확대와 실버타운 내 복지 서비스 연계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방향은 맞다. 문제는 실행의 속도와 촘촘함이다.
시설이 있어도 '살 만한 곳'이 아니라면
입주 문을 통과하더라도 끝이 아니다. 한국노인복지학회가 2023년 6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실버타운 입주자들이 만족도 저하의 가장 큰 이유로 꼽은 것은 의료·돌봄 서비스 부족이었다. 주거 공간은 갖췄지만, 정작 노인에게 필요한 건강 관리와 일상 돌봄이 뒤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실버타운은 단순히 '나이 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다. 의료, 식사, 여가, 사회적 관계가 한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기능한다. 그 연결 고리 하나가 끊어지면,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고립의 공간이 될 수 있다.
3만 명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그 이름조차 쓸 수 없는 더 많은 노인들이 밖에 있다. 초고령사회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그 사회를 어떻게 맞이하느냐의 문제다. 지금 한국은 그 질문 앞에 충분히 진지하게 서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