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술 패권의 새로운 전장인 양자과학기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미국과 중국이 매년 수조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며 양자컴퓨팅과 양자통신 분야의 표준을 선점해 나가는 가운데, 한국 역시 독자적인 원천기술 확보와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국가적 총력전에 돌입했다. 정부가 '30년 장기 전략적 기초연구 체계'를 도입해 양자컴퓨터 개발 등 원천기술 확보를 전폭 지원하기로 한 것은, 양자 기술이 단순한 미래 먹거리를 넘어 국가 안보와 차세대 산업의 명운을 가를 핵심 게임체인저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양자 패권 경쟁과 30년 대계의 필요성
양자과학기술은 기존 컴퓨터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연산을 수초 만에 해결하는 양자컴퓨팅, 도청이 불가능한 양자통신, 초정밀 측정을 가능하게 하는 양자센싱 등을 아우르는 분야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들에 따르면 전 세계 양자 기술 시장은 향후 10년 내 수백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국의 양자 기술 수준은 선도국인 미국 대비 약 80%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기술 격차는 약 4~5년으로 평가된다. 원천기술 확보가 늦어질 경우 차세대 산업 전반에서 기술 종속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정부가 도입한 '30년 장기 전략적 기초연구 체계'는 단기 성과주의에 급급했던 기존 R&D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양자 기술은 기초과학과 첨단 공학이 고도로 결합되어야 하는 분야로, 최소 10년 이상의 지속적인 투자가 뒷받침되어야만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정권의 변화나 단기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연구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독자적인 양자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원천기술을 축적할 수 있다.
제조·통신·금융·방산 아우르는 '초격차 양자 동맹'
양자 기술의 조기 상용화와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는 연구실에 머물러 있는 기술을 산업 현장으로 끌어내리는 실증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는 2026년 1월을 기점으로 제조(삼성전자·LG전자), 통신(SKT·KT), 금융(KB국민은행·신한은행), 방산(한화) 등 국내 각 산업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양자 기술 실증과 상용화를 위한 대규모 민관 협력 전선을 구축하기로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산업별로 살펴보면 제조 분야에서는 양자컴퓨팅을 활용한 신소재 및 배터리 분자 구조 시뮬레이션이 본격화될 전망이며, 통신 분야에서는 양자암호키분배(QKD)와 양자내성암호(PQC)를 고도화해 국가 기간망의 보안성을 극대화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금융권은 양자 알고리즘을 활용한 초고속 포트폴리오 최적화와 리스크 관리 시스템 구축에 나서며, 방산 분야에서는 적의 스텔스기를 탐지할 수 있는 양자 레이더 및 초정밀 고감도 양자 센서 개발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이러한 이종 산업 간의 유기적 동맹은 수요 기업이 기술 개발 초기 단계부터 참여함으로써 R&D의 시장 부합성을 높이고 상용화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 인재 양성과 기술 자립화의 과제
정부의 장기 R&D 로드맵과 산업계의 동맹이 시너지를 내기 위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전문 인재 확보와 핵심 부품의 국산화다. 현재 국내 양자 분야 핵심 연구 인력은 수백 명 수준에 불과해, 미국과 중국 등 경쟁국에 비해 절대적인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 내 양자 대학원 확대와 다학제적 융합 교육 과정 신설을 통해 석·박사급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동시에, 해외 우수 한인 과학자들을 유치할 수 있는 파격적인 연구 환경과 보상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양자과학기술 국가 전략의 성공 여부는 장기적 투자의 일관성 유지와 민간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인재 생태계의 삼박자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구축하는 양자 기술의 기초체력이 향후 30년 뒤 대한민국의 디지털 영토와 국가 안보를 규정하는 결정적 열쇠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