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의 급격한 확산이 미디어 생태계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가운데, AI 기업과 언론사 간의 저작권 갈등이 결국 법적 공방으로 비화했다. 지난 2026년 2월 23일, 국내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는 오픈AI를 상대로 뉴스 기사 무단 학습에 따른 저작권 침해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각 사당 1억 3,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이번 소송은 기술 혁신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뉴스 콘텐츠 무단 사용 문제를 사법부의 판단 영역으로 끌어올린 결정적 계기로 평가받는다.
'무단 학습'이 흔드는 저널리즘의 근간
그동안 생성형 AI 기업들은 인터넷상에 공개된 뉴스 데이터를 자유롭게 수집해 거대언어모델(LLM)을 고도화해 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원저작자인 언론사와의 사전 협의나 적절한 대가 지불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AI 검색 서비스는 사용자의 질문에 언론사의 기사 내용을 요약·재구성하여 직접 답변을 제공한다. 이로 인해 이용자가 원본 뉴스가 게재된 언론사 홈페이지를 방문할 필요가 없어지는 '트래픽 감소'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미디어 업계 분석에 따르면, AI 검색의 대중화 이후 언론사 웹사이트로 유입되는 아웃링크 트래픽은 최대 30~40%까지 급감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언론사의 재정적 기반을 직접적으로 타격한다. 결국 고비용이 소요되는 심층 취재와 양질의 뉴스 생산은 언론사가 담당하고, 그 과실은 AI 플랫폼이 독식하는 기형적인 수익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규제 흐름과 국내 입법의 현주소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AI 기업의 독점적 지위 남용을 막고 언론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AI 법(AI Act)'을 통해 고성능 AI 모델 개발 시 학습에 사용된 저작물 목록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규정했다. 호주와 캐나다는 각각 '뉴스 미디어 협상 준칙'과 '온라인 뉴스법'을 제정하여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이 지역 언론사에 뉴스 사용료를 지불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대형 언론사들이 기술 기업을 상대로 대규모 저작권 소송을 진행하며 사법적 선례를 만들어가는 추세다.
반면 국내의 대응은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현행 저작권법은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수집을 '공정 이용'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산업 육성과 창작자 보호라는 가치 사이에서 공방을 거듭하며 입법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 사이 국내 언론사들은 글로벌 플랫폼과의 개별 협상력에서 절대적 열세에 놓여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하기 어려운 처지다.
공존을 위한 '정당한 보상' 법제화 서둘러야
이번 지상파 3사의 소송은 단순히 개별 기업 간의 대립이 아니다. 이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의 생산처인 저널리즘의 생존 여부와 직결된 문제다. 양질의 뉴스가 사라진 자리를 AI가 생성한 그럴듯한 오류(환각 현상)와 출처 불명의 정보가 채우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적 공론장과 민주주의 구성원 전체에게 돌아가게 된다. 기술의 진보가 지식의 원천을 고갈시키는 모순을 방지해야 할 시점이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는 AI 학습 데이터의 출처 투명성을 확보하고, 정당한 대가 지불을 의무화하는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표준 계약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대기업과 중소 언론사 간의 협상력 격차를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AI 기술과의 공존은 저작권에 대한 존중과 공정한 보상이라는 상식적 토대 위에서만 지속 가능하다.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곧 건강한 디지털 생태계를 유지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