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반도체,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미국과 아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포괄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EU 집행위원회는 3일(현지시간) '기술 주권' 강화를 목표로 하는 일련의 조치를 공개했으며, 이는 유럽산 제품 사용을 장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은 '클라우드 및 AI 개발법'…데이터 센터 3배 확충 목표
이번 계획의 핵심은 '클라우드 및 AI 개발법'(CADA)이다. CADA는 향후 5~7년 안에 유럽 내 데이터 센터 수용 능력을 현재의 3배 수준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데이터센터 건설을 촉진할 계획이다. 현재 유럽 클라우드 시장은 아마존웹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 등 미국 기업들이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CADA는 중요 데이터를 EU 소유 클라우드 서비스에 저장하도록 하고, 클라우드 제공업체에 대한 '주권 위험 평가'를 의무화하여 미국 클라우드법과 같은 외부 규제로부터 데이터를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를 위해 클라우드 서비스, 공급망, 데이터 처리 및 인프라가 EU 통제하에 있는지에 따라 4단계 주권 등급으로 분류하게 된다. 또한, 유럽산 칩 사용 및 에너지 효율 개선 데이터센터에 전력망 접속 우선권과 네트워크 요금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칩스법 2.0'으로 반도체 생산 점유율 두 배 확대 목표
EU의 '기술 주권' 강화 계획에는 유럽의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칩스법(Chips Act) 2.0'도 포함됐다. EU는 현재 10% 미만인 세계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2030년까지 두 배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칩스법 2.0'은 집행위가 대규모 국경 간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EU 집행위는 2035년까지 총 1,200억 유로(약 213조 원) 규모의 민관 공동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EU산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채택 장려 전략과 데이터 센터 및 AI 공장의 지속 가능한 전력망 통합을 위한 로드맵도 제시됐다. EU는 데이터 센터의 최소 에너지 효율 기준을 마련하여 친환경적인 구축을 유도할 방침이다.
'기술 주권'은 고립 아닌 경쟁력 강화…장기적 관점 필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병원을 운영하고,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서비스를 안전하게 지키는 기술을 타국에 의존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헤나 비르쿠넨 기술 주권 담당 부위원장은 "핵심 분야에서 항상 유럽 내에서 서비스와 데이터를 통제할 수 있도록 확실히 하고 싶다"며, 미국을 염두에 둔 듯 "누군가가 우리 서비스에 대해 '킬 스위치'를 쥐고 있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EU는 이번 조치가 보호주의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고립, 보호주의, 또는 기술적 분리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은 EU의 기술 주권 강화가 장기적인 과제임을 인정하면서도,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이 계획은 향후 몇 달간 EU 회원국 및 유럽의회와의 협의를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