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D램 제조사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2026년 6월 상하이 과창판 상장을 통해 조달할 자금 295억 위안(약 6조 7,000억 원) 가운데 90억 위안(약 2조 원)을 HBM(고대역폭메모리) 개발에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 정책과 자본시장이 맞닿은 지점에서, 글로벌 HBM 시장의 패권 구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HBM은 단순한 메모리가 아니다. AI 연산을 위해 GPU와 직접 연결되는 핵심 부품으로, 엔비디아의 H100·B200 같은 AI 가속기 칩의 성능을 좌우한다. 현재 HBM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곳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3E를 세계 최초로 엔비디아에 공급하며 시장 선두를 지키고 있고, 삼성전자는 HBM3E 8단·12단 제품의 품질 인증을 거치며 공급 확대를 추진 중이다. 마이크론이 미국 기업으로서 일정 지분을 가져가고 있지만, 한국 두 기업의 합산 점유율은 글로벌 HBM 시장의 90%를 웃돈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 추산이다.

중국의 추격, 단순한 모방을 넘어선다

CXMT의 이번 투자 계획이 주목받는 이유는 규모만이 아니다. 2조 원에 달하는 HBM 전용 투자를 상장 공모 자금으로 조달한다는 것은, 중국 민간 자본과 기관 투자자들이 반도체 추격전을 공식적으로 베팅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중국 정부는 기존에도 반도체 펀드(빅펀드)를 통해 수십조 원 규모를 지원해 왔다. 여기에 시장 자금까지 가세하면 속도가 달라진다.

기술 격차는 여전히 뚜렷하다. 현재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양산 중인 HBM3E는 초당 1.2테라바이트(TB) 이상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수준이며, 두 회사는 이미 HBM4 개발을 진행 중이다. CXMT는 HBM2 수준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1~2세대의 기술 격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D램 분야에서 CXMT가 선진 기업 대비 수년 이내에 격차를 좁혔던 전례를 감안하면, HBM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 기업의 R&D 전략, 지금 어디를 겨누는가

SK하이닉스는 HBM4에서 기존 MR-MUF(몰드 리플로우-몰드 언더필) 공정을 개선하는 동시에, TSMC와의 협력을 통해 로직 다이(베이스 다이)를 파운드리 공정으로 제작하는 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메모리와 파운드리의 경계를 허무는 구조적 변화다. 삼성전자는 자체 파운드리와 메모리 부문 간 시너지를 HBM4 개발에 적용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핵심 경쟁력은 적층 기술과 발열 제어에 있다. HBM은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구조인데, 단수가 높아질수록 발열과 신호 무결성 문제가 복잡해진다. HBM4에서는 16단 이상의 적층이 논의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TSV(실리콘 관통 전극) 정밀도와 열 방출 설계가 수율과 성능을 가른다. 이 영역에서의 공정 노하우는 단기간 복제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그러나 안주할 여유는 없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는 CXMT가 선진 장비를 도입하는 속도를 늦추고 있지만, 중국 내 장비 국산화 움직임도 동시에 빨라지고 있다. 반도체 제조 장비의 국산화율이 높아질수록 규제의 실효성은 약해진다. 한국 기업들이 기술 우위를 유지하려면 HBM4·HBM4E 세대에서 단순한 성능 향상을 넘어, 후발 주자가 따라오기 어려운 구조적 장벽을 설계 단계에서부터 내재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사점: 초격차는 선언이 아니라 투자 집중도로 증명된다

반도체 ETF가 국내 펀드 시장 상위권을 휩쓸고,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HBM 관련 기업으로 쏠리는 현상은 시장이 이 경쟁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자본은 기술 우위가 유지될 것이라는 신호에 반응하고 있다. 문제는 그 신호가 앞으로도 유효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다.

기술 격차는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벌려야 한다. CXMT가 2조 원을 HBM에 쏟아붓는 동안, 한국 기업들이 HBM4 이후 세대의 플랫폼 기술에서 얼마나 빠르게 상용화 레버리지를 확보하느냐가 향후 5년의 시장 판도를 결정할 것이다. 초격차는 구호가 아니라, 연구개발 예산의 배분표와 엔지니어 숫자로 증명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