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최근 한국 정부에 석유 제품 수출 통제 자제를 잇달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동발 원유 공급 불안이 장기화하면서 원유를 수입해 정제 후 재수출하는 한국 정유산업이 글로벌 연료 공급망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한 결과이다. 이는 한국산 석유 제품의 안정적인 수급이 각국의 에너지 안보에 직결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일본 정부는 한국 측에 경유 수출 제한을 자제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했으며, 미국은 항공유, 호주와 뉴질랜드는 휘발유의 공급 차질이 없도록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요청은 한국 정부가 원유 확보 차원에서 수출 제한 가능성을 시사하자 주요 수입국들이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과 코트라 자료에 따르면, 미국 항공유 수입의 71%가 한국산이며, 한국은 호주 정제연료 수입 시장에서 74억 달러 규모를 공급하는 최대 수출국이다. 지난해 한국의 석유 제품 수출 비중은 호주(16.8%), 싱가포르(13.6%), 일본(11.3%), 미국(10.2%) 순이었다.

정부는 한국 정유산업의 이러한 글로벌 공급망 영향력을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특히 석유 제품 공급을 담보로 호주, 뉴질랜드 등 자원 강국으로부터 희토류와 핵심 광물을 확보하는 '에너지·광물 스왑' 카드가 대표적인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 정유·석유화학 기업들은 호주 북서대륙붕 및 익시스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초경질유인 콘덴세이트를 핵심 원료로 활용해왔다. 한국석유공사 통계에 따르면 2026년 1월 한국의 호주산 콘덴세이트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7% 증가한 218만 배럴을 기록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