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속 카산드라는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의 능력을 가졌으나, 아폴론의 저주로 인해 그 누구에게도 신뢰를 얻지 못하는 비극적 운명을 살았다. 트로이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처절한 외침은 축제 분위기에 취한 시민들의 환호성에 묻혀버렸다. 역사 속에서 경고음은 늘 고독하며, 대다수가 안락한 현실에 안주할 때 가장 먼저 깨어 있는 자의 목소리는 종종 고독한 소수의견으로 남는다. 지난 5월 28일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카산드라의 쓸쓸한 뒷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안도감 속에 울린 두 갈래의 파열음
이날 한국은행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2.50%로 묶어두며 8회 연속 동결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시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고금리 장기화에 지친 시장 참여자들은 당분간 현 상태가 유지되리라는 안도감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잔잔한 호수 같았던 동결 결정의 수면 아래에는 묵직한 파열음이 숨어 있었다. 장용성 위원과 유상대 위원, 두 명의 금통위원이 연 2.75%로의 금리 인상을 주장하며 소수의견을 던진 것이다. 모두가 멈춤을 말할 때 홀로 전진을 외친 이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불협화음이 아닌,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향한 뼈아픈 경고장이다.
내수 진작이라는 달콤한 유혹과 그 이면
물론 금리 동결을 지지하는 이들의 논리도 나름의 타당성을 지닌다. 장기화된 고금리 여파로 골목상권은 얼어붙었고,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내수 침체의 그늘이 짙은 상황에서 금리를 더 올리는 것은 가뜩이나 취약한 경제의 불씨를 아예 꺼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섣부른 긴축이 가져올 경기 위축의 공포는 실로 구체적이고 즉각적이다. 민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경기 회복의 마중물을 부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따뜻한 지향점을 품고 있다.
가계부채와 물가, 방치할 수 없는 회색 코뿔소
하지만 따뜻한 온정이 언제나 올바른 처방전이 될 수는 없다. 장용성·유상대 위원이 던진 소수의견의 이면에는 지금 당장의 고통을 피하려다 더 큰 재앙을 맞이할 수 있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가계대출은 다시금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며 우리 경제의 가장 취약한 고리를 압박하고 있으며, 물가 상승 압력 역시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수입 물가 상승과 지정학적 불안 요인이 겹치면서 서민들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빚으로 쌓아 올린 가계부채의 모래성은 금리 인상이라는 예방주사 없이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
댐의 미세한 균열을 바라보는 파수꾼의 시선
논어(論語)에 '인무원려 필유근우(人無遠慮 必有近憂)'라는 말이 있다. 멀리 내다보며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 근심이 생긴다는 뜻이다. 두 위원의 소수의견은 바로 이 '먼 염려'에 닿아 있다. 당장의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동결하는 온건책은 달콤하지만, 그 사이 가계부채의 팽창과 물가 불안이라는 거대한 괴물은 덩치를 더 키우게 된다. 댐에 생긴 미세한 균열을 보고도 '아직 물이 새지 않는다'며 보수를 미루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소수의견은 붕괴를 막기 위해 지금 당장 망치를 들어야 한다는 파수꾼의 외침이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아침을 깨우듯이
금리 결정은 늘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고독한 여정이다. 8회 연속 동결이라는 대세 속에서 울려 퍼진 두 위원의 인상론은, 우리 경제가 직면한 가계부채와 물가라는 과제가 결코 뒤로 미룰 수 없는 시급한 불씨임을 웅변한다. 다수의 안도감에 취해 소수의 경고를 무시했던 트로이의 비극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다. 새벽녘 대지를 깨우는 차가운 서리처럼, 때로는 뼈아픈 경고음만이 우리를 깊은 안일함에서 구원하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