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제성장률이 치솟고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낭보가 들려올 때, 우리는 왜 기뻐하기보다 한숨을 먼저 쉬게 될까? 경제학 교과서는 고성장을 축복이라 말하지만, 오늘날 서민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지표상의 화려한 숫자가 가리키는 방향과 골목상권의 온도가 이토록 어긋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성장의 과실보다 물가 상승의 독배가 훨씬 빠르게 서민의 삶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시경제 지표의 호조는 착시를 일으키기 쉽다. 수출 대기업들이 글로벌 수요 회복에 힘입어 천문학적인 실적을 올리면 국가 전체의 성장률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하지만 이 온기가 내수 시장과 가계로 흘러들기 전에, 고물가라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는다. 유가 불안과 공급망 차질 등으로 촉발된 물가 상승은 월급봉투의 가치를 사정없이 깎아내린다. 결국 '성장률은 높은데 살기는 더 팍팍해지는' 기묘한 양극화가 발생한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통계청 자료(2026년 2월 26일 발표)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우려는 숫자로 명확히 증명된다. 지난해인 2025년 연간 월평균 소비지출은 명목 기준으로 전년 대비 1.7% 늘어났다. 얼핏 보면 소비가 활성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실질 소비지출은 오히려 0.4% 감소했다. 이는 미증유의 위기였던 코로나19 시기 이후 처음으로 나타난 실질 소비 감소세다. 지갑은 더 열었지만, 정작 손에 쥔 물건은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실질 소비의 감소는 단순한 지출 축소를 넘어 내수 시장의 장기 침체를 예고하는 경고등이다. 가계가 지갑을 닫으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직격탄을 맞고, 이는 다시 고용 위축과 소득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 호조가 아무리 눈부셔도, 국민 대다수가 종사하는 내수 생태계가 무너지면 경제의 기초체력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 지표상의 고성장이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는 '성장률 몇 퍼센트 달성'이라는 양적 성장의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정부와 정책 당국은 거시 지표의 화려함에 취해 서민 경제의 그늘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물가 안정과 실질 소득 보전이 전제되지 않은 고성장은 서민들에게는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진정한 경제 강국은 지표의 숫자가 아니라, 국민들이 마트 장바구니를 채울 때 느끼는 안도감에서 시작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