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한국 경제는 거대한 해일 앞에 선 것처럼 흔들려 왔다. 원유와 천연가스 등 핵심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 구조상, 중동발 공급망 충격은 단순한 비용 상승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일시적인 대외 변수로 치부하지 말고, 에너지 안보를 국가 생존의 핵심 과제로 삼아 선제적이고 근본적인 대비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중동 의존도를 낮추는 수입선 다변화 정책의 가속화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26년 4월 기준 한국의 원유 수입량 중 중동산 비중은 51.5%를 기록해 전년 동월(65.2%) 대비 13.7%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미국산 원유 수입 비중은 기존 17.3%에서 20%대 수준으로 늘어나는 등 가시적인 다변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절반을 넘는 중동 의존도는 여전히 위기 상황에서 치명적인 약점이다. 미주, 아프리카, 유라시아 등 대체 공급선과의 장기 계약을 확대하고 세제 혜택 등 유인책을 강화해 중동 중심의 수입 지도를 원점에서부터 재설계해야 한다.

둘째로, 비상 비축유 방출 체계와 물류망 안전장치를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중동의 핵심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거나 물리적 충돌이 장기화될 경우, 물리적인 원유 도입 자체가 중단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정부 및 민간 비축유의 방출 기준을 재점검하고, 유사시 즉각적인 시장 안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초단기 대응 매뉴얼을 확립해야 한다. 아울러 해상 수송로 다변화와 대체 수송 수단 확보를 위한 민관 합동 비상대책기구를 상설화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이번 위기를 에너지 소비 구조의 근본적 체질 개선과 국산 에너지 비중 확대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화석연료에 과도하게 편중된 에너지 포트폴리오는 대외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원자력 발전의 안정적 운영과 신재생에너지의 전략적 육성, 그리고 청정 수소 생태계 구축 등 국내에서 통제 가능한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중장기 로드맵이 차질 없이 이행되어야 한다. 동시에 산업계와 가정 전반의 에너지 이용 효율을 극대화하는 범국민적 절약 대책도 병행되어야만 대외 의존형 경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에너지 안보는 곧 국가 안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너지는 경제의 혈액이자 안보의 최전선이다. 사후약방문식의 임시방편으로는 다가오는 거대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파고를 넘을 수 없다. 정부와 산업계는 비상한 각오로 머리를 맞대고, 예산과 제도를 집중 투입해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요새를 구축해야 한다. 지금 당장 가용한 모든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선제적 조치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