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향약(鄕約)의 덕목 중 하나인 '환난상휼(患難相恤)'은 이웃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서로 돕는 공동체의 지혜를 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일터에서 이 아름다운 격언은 종종 서글픈 눈치 싸움으로 변질되곤 한다. 동료의 빈자리를 남겨진 이들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영세 기업의 현실 속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축복이 아닌 동료에 대한 미안함과 부채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 척의 작은 배에서 노꾼 한 명이 자리를 비우면 배가 제자리에서 맴돌듯, 영세 사업장에게 육아휴직은 여전히 감당하기 버거운 삶의 무게추다.

숫자가 보여주는 현실은 차갑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24년 육아휴직자 수는 20만 6,226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으나, 그 온기는 대기업에만 쏠려 있었다. 300인 이상 기업 종사자의 육아휴직 비중은 남성 67.9%, 여성 57.7%에 달한 반면, 4인 이하 사업장은 남성 4.3%, 여성 5.7%에 불과했다. 관련 기관의 조사에서도 이러한 격차는 선명하다.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의 육아휴직 이용률은 정부기관이 78.6%, 민간 대기업이 56.1%인 반면, 민간 소기업은 29.0%, 5인 미만 개인사업체는 겨우 10.2%에 그쳤다. 제도의 화려한 외양 뒤에 가려진 '양극화된 모성'의 자화상이다.

왜 소기업 노동자들은 아이 곁에 머물 권리를 내려놓아야 했을까. 조사 결과에 따르면 5~9인 영세 사업장에서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과중'(35.9%)이었으며, '사용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31.3%)와 '대체인력 구인난'(26.8%)이 그 뒤를 이었다. 실제로 최근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10명 중 4명(40.4%)은 여전히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없다고 답했다. 결국 '눈치'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은 동료에 대한 미안함과 구인난이라는 현실적 한계에서 비롯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재정 지원이나 법 개정만으로는 중소기업의 고질적인 인력난과 조직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돈 몇 푼 쥐여준다고 해서 대체인력을 구하기 힘든 지방의 제조업체나 영세 서비스업의 사정이 하루아침에 나아지겠냐는 회의론이다. 그러나 제도적 보완 없이 문화의 자발적 변화만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가깝다.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실질적인 유인책이 선행되어야만 비로소 기업도 인식 변화의 첫걸음을 뗄 수 있다.

다행히 변화의 물꼬는 트이고 있다. 정부는 고용보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2025년 1월 1일부터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을 첫 3개월간 월 최대 250만 원으로 대폭 인상하고 사후지급금 제도를 폐지했다. 이어 2026년 1월 1일부터는 대체인력지원금을 30인 미만 사업장 기준 월 최대 140만 원으로 올리고, 남은 동료들의 부담을 덜어줄 업무분담 지원금도 월 최대 60만 원으로 확대했다. 민관 협업의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신한금융그룹과 협업한 '대체인력 문화확산지원금'은 약 7개월간 2,199개 사업장에 총 35.5억 원이 지급되며 현장의 숨통을 틔웠다. 인천의 한 제조업체 관계자가 "지원금 덕분에 대체인력 채용 부담이 줄어 남성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휴직을 쓰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전한 것은 정책이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처방전도 환자가 그 존재를 모른다면 무용지물이다. 관련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의 대체인력 지원금에 대한 인지도는 '잘 알고 있다'가 4.8%에 불과했고, '모른다'는 답변이 58.7%에 달했다. 제도의 혜택이 가장 절실한 영세 기업일수록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제는 제도의 외연을 넓히는 것을 넘어, 현장의 구석구석까지 제도가 도달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와 행정적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법과 제도는 사회의 온도를 조절하는 보일러와 같다. 대기업이라는 안방만 따뜻하고 영세 소기업이라는 문간방이 차디차다면 그 사회의 온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대체인력 지원금의 확대가 단순한 재정 지출을 넘어, 일터의 고독한 눈치 싸움을 멈추고 연대의 온기를 불어넣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더는 고독한 분투가 아닌, 온 마을의 따스한 품이 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겨울도 걷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