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의 한 골목 끝, 철제 울타리 안에 토마토 줄기가 사람 키만큼 자라 있다. 텃밭 한 켠에는 어린이 손바닥만 한 팻말이 꽂혀 있다. 「3동 할머니 구역」. 옆 칸에는 「초등 2학년 채소팀」. 이 작은 땅 30평을 두고 열두 가구가 봄부터 가을까지 순서를 정해 물을 준다. 관리사무소 직원도, 구청 공무원도 아니다. 주민들이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수확물을 나눈다.
이런 풍경이 서울 전역에서 동시다발로 번지고 있다. 서울시가 2024년부터 3년 목표로 추진한 '매력가든·동행가든 프로젝트'는 1,007개 정원 조성이 목표였다. 그런데 2025년 11월 기준, 1년을 남기고 이미 1,010곳이 완공됐다. 총 면적 68만㎡. 축구장 95개를 나란히 펼쳐 놓은 크기다. 이 정원들이 흡수한 이산화탄소는 469톤으로 집계됐다. 중형 승용차 한 대가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 700회 이상 달려야 내뿜는 양이다.
정원이 도시 생태계를 바꾸는 방식
공유 정원의 생태적 효과는 단순히 '나무를 심었다'는 차원이 아니다. 콘크리트가 흡수하던 빗물은 이제 흙이 머금는다. 여름철 지표면 온도를 낮추는 '열섬 완화' 효과도 측정되고 있다. 도심 속 녹지 패치가 늘어날수록 새와 곤충의 이동 경로가 열린다. 생태학자들은 이를 '그린 코리도(green corridor)'라 부른다. 단절된 섬이 아닌, 연결된 생태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2025년 5월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개막한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이 흐름의 가장 가시적인 증거다. 개막 5개월 만에 누적 방문객 1,000만 명을 넘겼고, 보라매공원을 찾는 시민 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2.6배 늘었다. 정원이 도시 인프라의 '장식'이 아니라 시민이 실제로 찾아오는 '목적지'가 됐다는 뜻이다. 잘 가꾼 녹지 한 곳이 주변 상권과 부동산 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흙을 나누는 사람들, 공동체가 싹트다
공유 정원의 더 깊은 변화는 생태가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다. 서울 은평구에서 공유 텃밭을 운영하는 한 주민 모임은 5년 전 세 가구로 시작해 지금은 스물두 가구가 참여한다. 처음엔 어색하게 인사만 나누던 이웃들이 지금은 씨앗을 나누고, 아픈 식물의 원인을 함께 찾는다. 도시농업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접촉 빈도가 신뢰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눈을 피하던 사람들이, 흙 앞에서는 말문을 튼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도시의 고립감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공유 정원은 처방 없이 처방을 내리는 공간이 되고 있다. 영국 런던의 '얼로트먼트(allotment)' 제도, 독일 베를린의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은 수십 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 정원 문화다. 대기자가 수년씩 줄을 서고, 정원 하나를 물려받는 것이 하나의 자산이 된다. 서울의 공유 정원 실험이 제도적 뿌리를 내리려면, 땅의 지속성과 운영 주체의 자율성을 어떻게 보장할지가 핵심 과제로 남는다.
녹지 확장이 남긴 숙제
목표를 1년 앞당겨 달성한 숫자 뒤에는 짚어야 할 지점도 있다. 양적 확장 속도가 빠른 만큼, 조성 이후 관리 주체가 불분명한 정원이 방치되거나 본래 취지를 잃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나온다. 행정이 만들고 시민이 유지하는 구조가 제대로 맞물리려면, 주민 역량을 키우는 교육과 소규모 운영 예산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정원은 심는 순간이 아니라 가꾸는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 콘크리트를 걷어낸 자리에 흙을 되돌리는 일, 그 흙 위에서 낯선 이웃과 손을 나란히 올리는 일. 서울의 68만㎡는 그 시작점이다. 이 땅이 진짜 공동체의 뿌리가 될 수 있는지는, 첫 삽을 든 시민들의 다음 계절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