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골목 안쪽, 열 평 남짓한 공간에 책이 빼곡하다. 평일 오후인데도 자리가 없다. 노트북을 펼친 프리랜서, 그림책을 고르는 육아맘, 낯선 시집을 훑는 대학생. 이 서점 주인은 일주일에 두 번 북클럽을 열고, 한 달에 한 번 지역 작가를 초청한다. 책 판매로 버는 돈은 임대료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문을 닫지 않는다. 「책이 미끼라면, 공간이 낚시터」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발간한 '2024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국내 서점 수는 2,484개로 전년도 2,528개에서 44개 줄었다. 감소율로 따지면 1.74%. 수치만 보면 완만해 보이지만, 10년 전 수천 개를 넘나들던 동네 서점 숫자를 떠올리면 이미 바닥권에서의 소폭 감소다. 온라인 서점이 전체 도서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지 오래다. 대형 플랫폼은 10% 할인에 마일리지를 얹고, 당일 배송까지 쏜다. 동네 책방이 '정가 판매'로 맞서는 건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팔리는 게 아니라 '머무는 곳'으로

생존한 독립서점들의 공통점이 있다. 책을 파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연, 독서 모임, 글쓰기 클래스, 작가 사인회. 수익 모델이 다층화되고 있다. 월정액 구독 서비스를 도입해 매달 큐레이션 도서를 배달하는 곳도 늘었다. 서점이 편집자의 역할을 자처하면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독자의 막막함을 정면으로 공략한다. 알고리즘이 취향을 분석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사람이 고른 책 한 권'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간 임대 수익도 새로운 줄기가 됐다. 팝업 전시, 기업 브랜딩 행사, 지자체 문화 프로그램 유치. 서점이 지역 문화 인프라로 기능하면서, 구청이나 도서관 대신 공적 예산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독립서점을 지역 관광 자원으로 육성하고 지원금을 지급한다. 책방 하나가 지역 브랜드가 되는 구조다.

일본·영국의 '서점 부활' 실험이 주는 힌트

해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읽힌다. 일본에서는 2010년대 이후 '작은 서점' 붐이 일었다. 도쿄 시모키타자와 일대의 독립서점들은 단순 판매 공간이 아니라 동네 살롱으로 기능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압박 속에서도 버텼다. 영국에서는 독립서점 협회가 집계한 회원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보고가 나온 바 있다. 팬데믹 이후 '가까운 동네에서 소비하자'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로컬 서점이 공동체 결속의 구심점으로 재평가됐다는 분석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독립서점 전용 플랫폼이 등장해 소규모 서점들을 묶어 온라인 판로를 열어주고 있다. 개별 서점으로는 불가능한 마케팅을 집단지성으로 돌파하는 시도다. '동네 서점 지도' 앱을 통해 여행 중 서점을 탐방하는 문화도 자리를 잡았다. 서점이 목적지가 된 것이다.

버티는 힘, 그리고 남은 과제

그렇다고 장밋빛만은 아니다. 임대료 상승은 여전히 가장 큰 위협이다. 서점이 골목 상권을 살리면, 임대료가 오르고, 정작 그 서점이 쫓겨나는 아이러니가 되풀이된다. 지자체 지원도 일회성 보조금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구조적 안전망이 아니라 임시방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창업 5년 차 이하 독립서점의 폐업률이 높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 이를 방증한다.

결국 살아남는 서점들이 보여주는 건 단 하나다. 책만 파는 서점은 이미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는 냉정한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인정한 위에서 새 판을 짜는 자만이 버틴다는 것. 2,484개. 이 숫자가 내년에 더 줄어들지, 아니면 다른 형태로 채워질지는 서점 주인 각자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