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클럽 '타'의 공연장 입구에는 매주 손으로 쓴 라인업 포스터가 붙는다. 출연료는 없다. 드링크 판매 수익 일부가 전부다. 그래도 밴드들은 줄을 선다. 소셜미디어 팔로워 수백 명을 가진 싱어송라이터부터 결성 3개월 차 밴드까지, 이 소박한 무대가 그들에게는 '현존의 증거'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무대를 넘어설 통로가 좁아지고 있다.

국내 음원 스트리밍 시장에서 상위 1%에 해당하는 대형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들이 전체 스트리밍 수익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는 구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음원 유통 관련 업계 통계에 따르면, 특정 음원의 스트리밍 점유율은 소수의 메이저 레이블에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인디 뮤지션이 월 100만 스트리밍을 달성해도 손에 쥐는 정산액은 100만 원 안팎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현장에서 통용된다. 음악으로 먹고살기 위한 최소 기준선에 닿으려면, 그 수십 배의 수치가 필요하다.

발판이 줄었다 — 공영 플랫폼의 철수

설상가상으로 인디 씬의 숨통이었던 공적 플랫폼들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네이버 온스테이지는 2023년 서비스를 종료했다. 신인 인디 아티스트를 발굴해 온 EBS 스페이스 공감의 '헬로루키'도 같은 해 멈췄다. 두 프로그램 모두 뚜렷한 알고리즘이나 광고 논리 없이 음악의 가능성만으로 뮤지션을 소개하던 창구였다. 그 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가에 대한 답은 아직 없다.

2024년 3월, 인디 음악계의 원로 격인 윤동환은 공개 발언을 통해 플랫폼 생태계의 구조적 문제를 직접 거론했다. 그는 인디 뮤지션이 음악을 발표해도 발견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발견되지 않는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 음악과 다름없다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현장에서는 이를 반박할 사람이 많지 않았다.

생존의 재설계 — 독립 유통과 직접 연결

그럼에도 인디 씬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플랫폼 의존을 줄이는 방향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독립 유통사를 통한 글로벌 스트리밍 직접 배포, 밴드캠프와 같은 직접 판매 플랫폼 활용, 유튜브와 틱톡을 통한 자체 콘텐츠 생산이 세 가지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팬클럽 멤버십 구독 모델을 도입해 월정액 후원을 받는 뮤지션도 늘고 있다. 음반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시대가 끝났다면, 관계를 팔아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공연 수익 구조도 바뀌었다. 대관 공연장 중심에서 벗어나 카페, 독립서점, 갤러리와 협업하는 '장소 특정형 공연'이 확산됐다. 100석 짜리 공연장을 절반도 못 채우는 것보다, 30명이 꽉 들어찬 서점에서 앨범 비용을 다 뽑는 편이 낫다는 계산이 작동한다. 수치는 작지만 지속 가능성은 오히려 높다.

해외 시장 직접 진출도 선택지가 됐다. 한국 인디 밴드들이 일본, 동남아 공연 투어를 자체 기획해 수익을 내는 사례가 꾸준히 보고된다. 케이팝이 깔아놓은 한국 음악에 대한 관심이 인디 씬에도 간접적으로 흘러들어오는 효과다. 물론 그 통로가 자동으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SNS 운영, 해외 팬 커뮤니티 관리, 현지 공연 에이전트 섭외까지 뮤지션 한 명이 감당해야 할 업무는 음악 외적으로도 방대하다.

다양성이라는 공공재 — 시장이 해결 못 하는 것

인디 음악의 생존은 단순히 개별 뮤지션의 문제가 아니다. 장르의 다양성, 실험적 시도, 상업 논리와 무관한 음악의 존재는 결과적으로 주류 음악이 자양분을 빨아들이는 토양이다. 케이팝 프로듀서들이 참고하는 사운드 레퍼런스 상당수가 인디 씬에서 먼저 시도된다는 것은 업계 안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토양이 죽으면 작물도 결국 바뀐다.

그러나 시장은 다양성을 보존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이미 검증된 것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고, 플랫폼 수익 구조는 재생 수 경쟁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다. 공적 플랫폼이 철수한 자리를 민간이 채우지 못하는 현실에서, 인디 음악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다양성을 어떤 방식으로 지속시킬 것인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으로 남아 있다. 뮤지션들은 오늘도 그 질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대답하며 무대에 오른다. 답이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