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 매장 앞에서 주문을 못 해 그냥 돌아서는 노인. 버스 정류장에서 QR 코드를 찍지 못해 교통카드를 충전하러 멀리까지 걸어가는 어르신. 이것은 개인의 무능이 아니다. 사회가 속도를 높이면서 일부를 뒤에 남겨둔 결과다.
키오스크는 이제 식당, 은행, 병원, 관공서 어디에나 있다. 모바일 결제 없이는 할인도, 예약도 어렵다. 인프라가 디지털로 급격히 재편되는 동안,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조용히 일상의 접근권을 잃어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70대 이상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 평균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숫자가 문제가 아니다. 그 숫자 뒤에 매일 작은 좌절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문제다.
디지털 포용 교육이 해법이라는 말은 맞다. 그러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지자체와 복지관 곳곳에서 스마트폰 교육이 열리고 있지만,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몸이 건강하고, 교통이 닿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이다. 독거노인, 농촌 거주 고령자,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에게 '교육받으러 오라'는 말은 공허하다. 교육이 사람에게 닿으려면 교육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오프라인 창구 유지 문제는 더 직접적이다. 은행 점포는 수익성을 이유로 빠르게 줄고 있다. 특히 농어촌과 도시 외곽 지역에서는 가장 가까운 은행 지점까지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호주나 일본은 이미 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었다. 우체국이나 편의점 같은 생활 밀착형 공간에서 은행 업무를 대신 처리하는 '은행 대리업' 모델이다. 접근성이 낮은 지역일수록 이 구조가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도 이 방향을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이다.
디지털 전환을 늦춰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방향은 옳다. 문제는 속도와 설계다. 전환이 빠를수록, 뒤처지는 사람을 붙잡아 줄 시스템을 촘촘히 설계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키오스크 옆에 안내 직원 한 명을 두는 것, 공공 앱에 글자 크기 확대 기능을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것, 행정 처리에 전화와 방문을 병행하는 것. 이것들은 기술의 퇴보가 아니라, 기술을 진짜 도구로 만드는 조건이다.
디지털 격차는 정보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존엄의 문제다. 스스로 주문하고, 돈을 찾고, 민원을 넣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막혔을 때 사람은 사회에서 밀려난 느낌을 받는다. 고령층 1000만 명 시대를 앞두고, 우리가 설계하는 디지털 사회가 그들을 포함하고 있는지 물어야 할 때다. 편리함이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고 있다면, 그 편리함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