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0년 영국 앤 여왕은 세계 최초의 저작권법 '앤 여왕법'에 서명했다. 인쇄업자의 독점을 깨고 작가에게 창작의 대가를 돌려주기 위한 법이었다. 3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다. 다만 이번엔 상대가 인쇄기가 아니라 수천억 개의 매개변수로 작동하는 언어 모델이다.
앤트로픽은 2025년 9월, 작가들과의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최소 15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조 원의 보상에 합의했다. 미국 법원에는 같은 해 12월 기준으로 AI 저작권 침해 소송 66건이 계류 중이다. 숫자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이건 몇몇 예민한 작가들의 감정 싸움이 아니다. 창작 경제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적 충격이다.
국내에서도 파장은 감지된다. 정부가 2025년 6월 AI 저작물 등록 안내서를 발표하자, 하반기 등록 건수가 상반기 대비 10배 이상 급증했다. 창작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두려움인지, 선점 본능인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2026년 1월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한 발짝 나아갔다. 뉴스, 출판, 음악처럼 거래 시장이 명확하게 형성된 콘텐츠는 이른바 '선사용·후보상' 방식의 예외 없이 정상적인 저작권 거래를 원칙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콘텐츠를 먼저 학습에 쓰고 나중에 보상하는 관행에 제동을 건 셈이다. 방향은 옳다. 그러나 원칙 선언과 집행 사이의 거리는 언제나 멀다.
기술 기업들은 이렇게 반론한다. AI 학습은 인간이 책을 읽고 영향을 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화가가 미술관에서 거장의 작품을 보고 화풍을 익혀도 저작권료를 내지 않지 않느냐고. 일견 그럴 듯한 비유다. 하지만 인간 화가는 한 번에 한 작품을 본다. AI는 수억 개의 작품을 동시에, 반복적으로, 상업적 목적으로 '소화'한다. 규모의 차이는 종류의 차이가 된다.
그렇다고 창작자들의 요구가 모두 정당한 것만은 아니다. 공정 이용의 경계, 학습 데이터의 기여도 측정, 보상 배분의 투명성—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해 창작자 진영도 아직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누구의 글이 AI의 어떤 능력을 얼마나 키웠는지를 증명하는 일은, 강물에 흘려보낸 잉크의 비중을 재는 것만큼 어렵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자를 가리는 재판이 아니라, 공존의 언어를 설계하는 일이다. 음악 저작권의 집중 관리처럼, 학습 데이터 사용에 대한 산업 전반의 라이선싱 체계를 만들고 보상 기금을 제도화하는 방향이 현실적이다. 기술은 이미 달리고 있다. 법이 따라잡는 속도만큼, 창작자의 생계도 위협받는다.
붓은 빼앗기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가 그 붓으로 그린 그림을 허락 없이 가져다가 새 붓을 만드는 법을 익혔다. 그 값을, 우리는 아직 치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