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해독하는 행위가 아니다. 줄과 줄 사이의 침묵을 견디고, 모르는 단어 앞에서 잠시 멈추고, 맥락을 스스로 짜 맞추는 그 지난한 과정 전체가 읽기다.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를 「독자가 함께 쓰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화면이 밑줄을 그어주고, 알고리즘이 수준을 조정하고, AI가 요약을 건네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과연 무엇을 함께 쓰고 있는 것일까.
교육부는 2024년 11월 29일, 국어와 실과 과목을 AI 디지털교과서(AIDT)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사회와 과학의 도입 시기를 늦추겠다고 발표했다. 문해력 저하 우려가 현장에서 쏟아지자 부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다. 현명한 후퇴다. 그러나 이 결정이 진짜 속도 조절의 시작인지, 아니면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임시 양보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AI 디지털 교과서를 찬성하는 논리는 탄탄하다.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춰 학습 경로를 조정하고, 교사는 행정 부담을 덜어 진짜 가르침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 격차를 기술로 메울 수 있다는 전망도 매력적이다. 이 가능성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무엇이 준비되지 않은 채로 먼저 들어오느냐'다.
스웨덴은 2023년부터 디지털 기기 의존 교육을 되돌리기 시작했다. 종이 교과서와 손 글씨 수업을 다시 늘리고, 스크린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국가 정책을 선회했다. 근거는 단순했다. 독해력과 집중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핀란드도 비슷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디지털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이 속도를 늦추는 동안, 우리는 서두르고 있다.
국내 청소년의 스마트폰 의존도는 이미 임계점에 가깝다. 하루 평균 스크린 타임이 수 시간을 넘는 학생이 다수라는 것은 교사라면 누구나 체감하는 현실이다. AI 교과서가 학교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지금껏 그나마 분리되어 있던 학습 공간마저 화면으로 채워진다는 뜻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화면. 아이들의 눈이 쉴 곳이 없어진다.
물론 교사의 역할을 강화하고,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병행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반론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전제 조건이 충족되려면 교사 연수 체계, 학급당 학생 수, 학교 인프라까지 함께 바뀌어야 한다. 기술은 내년에 들어오는데, 그 조건들은 언제 갖춰지는가. 도구는 준비됐지만 사람이 준비되지 않은 교실에서 AI 교과서는 혁신이 아니라 혼란의 씨앗이 된다.
문해력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무섭다. 아이들이 긴 문장을 피하고, 요약본으로 원문을 대체하고, 스스로 추론하기보다 정답 제안을 기다리는 습관이 스며들 때, 우리는 그것이 교육의 실패임을 너무 늦게 알아챌 수 있다.
씨앗을 심는 일은 급할수록 얕게 심게 된다. 깊이 내려앉은 뿌리만이 폭풍을 견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