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정규직 100을 기준으로 하면,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숫자가 단순해 보여도 그 의미는 무겁다. 어느 문을 두드리느냐에 따라 생애소득이 수억 원 단위로 갈리는 구조에서, 청년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포기하고 '좋은 자리'를 기다리며 구직 자체를 단념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시장이 만들어낸 합리적 결과다.

격차의 실체: 수치가 말하는 이중 노동시장

고용노동부 집계 기준, 300인 이상 대기업과 300인 미만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꾸준히 벌어져 왔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대기업의 60% 안팎에 머물며, 복리후생·고용 안정성까지 포함하면 실질 처우 격차는 더 크다는 것이 노동 연구기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문제는 이 격차가 생산성 차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 체계 아래에서 대기업 정규직은 근속연수가 쌓일수록 임금이 자동 상승하는 반면, 중소기업은 그 기반 자체가 약하다. '같은 일을 해도 어디에 소속됐느냐'가 보수를 결정하는 구조적 왜곡이 고착화된 것이다.

이 왜곡은 노동시장 밖으로도 번진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는 청년층이 늘면서 결혼과 출산 시기가 뒤로 밀리고, 급기야 포기로 이어지는 경로가 데이터로 확인된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명대까지 내려앉은 배경에는 주거비·교육비 문제뿐 아니라 '안정된 일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가정을 꾸리기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인구 문제의 하나의 뿌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왜 고쳐지지 않는가: 연공제의 관성과 이해관계의 충돌

해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로 전환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같은 직무, 다른 임금' 구조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 노동경제학계의 오랜 처방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2025년 8월 언론 인터뷰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법제화를 위해서는 직무급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정부 수장이 직무급 전환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 자체로 정책 방향의 전환을 시사한다.

그러나 현실의 저항은 만만치 않다. 연공서열제 아래 쌓인 기득권을 가진 대기업 노조는 직무급 도입이 자신들의 임금 상승 경로를 차단할 수 있다고 경계한다. 경영계는 직무 평가 체계 구축에 따른 비용과 노사 갈등을 우려한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도 이해관계가 엇갈려 진전이 더디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결국 기득권 구조이기도 하다. 개혁이 어려운 것은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바꾸면 손해 보는 집단이 뚜렷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망: 개혁의 속도가 곧 인구 시계의 속도

비교 사례는 있다. 독일은 산별 교섭 체계와 직무 중심 임금 구조를 결합해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한국보다 낮은 수준에서 관리한다. 일본도 2010년대 후반부터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제화하며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속도를 냈다. 두 나라 모두 완전한 해법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제도적 틀을 바꾸는 것이 격차 완화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은 공통으로 확인된다.

한국의 경우, 직무급 도입은 단독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중소기업의 생산성 자체를 끌어올리는 산업 정책, 원·하청 구조 개선,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가 동시에 맞물려야 한다. 87개 산업 가운데 81개에서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확인된다는 분석은, 이 문제가 특정 업종이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노동시장 전반에 내재된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청년이 구직을 단념하고, 출산을 미루고, 인구가 줄어드는 흐름은 노동시장 개혁의 속도와 정확히 역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