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조 원. 코로나19 충격 이후 정부가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묶어둔 대출 만기 연장 규모다. 이 조치가 2025년 9월을 끝으로 종료된다. 5년 넘게 유예된 상환 압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 있는 시점이 코앞에 다가선 것이다. 문제는 이 42조 원이 전체 그림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자영업자들이 2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동시에 빌린 다중채무 총액은 이미 70조 원을 웃도는 것으로 분석된다. 빚이 빚을 덮는 구조, 그 임계점이 가까워지고 있다.
왜 지금이 분기점인가
만기 연장은 말 그대로 '유예'였다. 원금도, 이자도 갚지 않아도 되는 기간 동안 자영업자들은 살아남았지만, 채무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어났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진 2023~2024년 사이 이자 부담은 누적됐고, 내수 침체로 매출은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쳤다. 폐업을 미루며 버텨온 이른바 '좀비 사업자'들이 만기 도래와 함께 한꺼번에 수면 위로 올라올 경우, 금융권 전반에 미치는 충격은 단순한 대출 부실을 넘어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중채무자 문제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구조에 있다. 1금융권에서 막히면 2금융권, 거기서도 막히면 카드론이나 저축은행으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빚을 쌓아온 자영업자들은 상환 능력이 한계에 달했을 때 한 곳의 연체가 연쇄적으로 전 금융권에 퍼진다. 이들에게 만기 연장 종료는 단순히 '갚아야 할 날짜'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버틸 여지가 없어지는 순간을 의미한다.
만기 연장이 아닌, 맞춤형 채무조정이 필요한 이유
정부와 금융당국이 만기 연장 조치를 반복해온 것은 급한 불을 끄는 데는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유예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실의 규모는 커지고, 정작 회생 가능성이 있는 채무자와 그렇지 않은 채무자를 구분하는 작업이 뒤로 밀린다. 모든 채무자를 같은 방식으로 '연장'하는 것은 공평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재기 가능한 자영업자의 회생 시계도 함께 늦추는 결과를 낳는다.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채무자의 상황을 세분화한 맞춤형 조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업을 지속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자영업자에게는 원금 분할 상환 기간을 늘리고 금리를 조정하는 방식의 재구조화가 유효하다. 반면 이미 사실상 폐업 상태에 놓인 채무자에게는 신속한 채무 면제나 개인회생 연계를 통해 경제적 재기의 기회를 열어주는 편이 장기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낮춘다. 일률적인 만기 연장은 이 둘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봉책에 머문다.
연착륙의 조건: 제도 설계가 승부를 가른다
비교 사례는 이미 존재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들은 단순 유예에서 벗어나 소득·자산 연동형 채무 조정 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회생 가능한 차주는 살리고, 불가능한 부실은 조기에 털어내는 방식으로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했다. 한국도 개인회생이나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 조정 프로그램이 존재하지만, 자영업자 특성에 맞춰 설계된 섬세한 제도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9월 만기 종료를 앞두고 금융당국이 어떤 후속 조치를 내놓느냐가 향후 경로를 결정짓는다. 또 한 번의 전면적 연장은 부실을 다음 정부, 다음 세대로 떠넘기는 방식이다. 반면 아무런 완충 장치 없이 만기를 그대로 종료하면 70조 원짜리 뇌관이 금융 시스템 한복판에서 터지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연착륙의 핵심은 속도보다 정밀도다.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를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