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미국 의회가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서명했을 때 세계는 그 여파를 얕잡아 봤다. 평균 관세율 45%를 들이밀자 캐나다와 유럽이 보복 관세로 응수했고, 세계 무역량은 3년 만에 3분의 1 토막이 났다. 대공황이 악화된 데는 총탄 한 발도 필요 없었다. 관세라는 종이 한 장으로 충분했다.
그 교훈이 100년이 채 되기도 전에 다시 소환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중국의 공급망 자립화 정책까지. 주요국들이 앞다퉈 자국 우선주의를 법제화하면서, 자유무역이라는 전후 질서의 뼈대가 소리 없이 삐걱거린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분쟁 조정 기능을 사실상 잃었고, 다자주의라는 단어는 외교 연설문 속 화석이 되어 가고 있다.
이 흐름이 한국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숫자가 말해 준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25년 한국의 연간 수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7,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외형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미국의 관세 영향으로 대미 수출은 오히려 감소세로 돌아섰다. 총액의 성장이 구조적 위험을 가렸을 뿐,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수출 편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일각에서는 보호무역이 오히려 기회라고 말한다. 현지 생산을 늘리면 관세 장벽을 우회할 수 있고, 각국의 보조금 정책을 역이용해 투자 비용을 줄일 수도 있다는 논리다. 틀린 말은 아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 배터리 공장을 확대하고, 현대차가 조지아 공장을 가동한 것은 그 실증이다. 그러나 현지화는 비용이다. 자본과 기술과 인력을 동시에 이식해야 하는 이 전략은, 체력이 충분한 대기업에게나 현실적인 선택지다. 중소·중견 수출기업에게 현지화는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는가. 기술이다. 대체할 수 없는 기술. 상대가 관세를 올려도, 수입을 막으면 자국 산업이 더 다치는 그런 기술. LG에너지솔루션이 글로벌 배터리 업계 최초로 특허 출원 10만 건을 돌파한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협상 카드다. 기술 초격차는 보호무역의 논리를 무력화하는 가장 강한 방패다.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화하겠다고 외쳐도, 극자외선(EUV) 장비와 고순도 소재, 첨단 패키징 기술 앞에서는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물론 기술 격차란 영구적이지 않다. 중국은 매년 수십조 원을 반도체와 배터리에 쏟아붓고 있고, 따라잡는 속도는 10년 전과 다르다. 현지화와 기술 초격차를 동시에 추구하면서도, 특정 국가나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는 포트폴리오 분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도·동남아·중동 등 신흥 시장으로의 수출 다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의 기본값이 되어야 한다.
한국은 자원도 없고 내수도 크지 않은 나라다. 수출로 먹고산다는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그 조건 안에서 살아남는 법은, 파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파도가 오기 전에 배의 용골을 더 깊이 박아 두는 것이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배는, 가장 큰 배가 아니라 가장 깊이 뿌리내린 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