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의 한 피트니스 센터. 오전 10시, 기구를 점령한 이들은 20~30대가 아니다. 60대 중반의 김모 씨는 퍼스널 트레이닝 3개월 차다. 매달 30만 원을 낸다. 「운동이 취미냐」고 물으니 「노후 투자」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스마트워치로 심박수를 체크하고, 귀가 후엔 앱으로 식단을 기록한다.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소비 패턴은 30대 직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다. 은퇴 이후에도 경제력과 활동성을 유지하며 자기 중심적 소비를 이어가는 60~70대를 가리킨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25년 기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섰다.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다. 이 세대의 자산 보유 비중과 소비 여력이 과거 어느 노인 세대와도 다르다는 점이 핵심이다.
건강·여가·디지털까지… 시니어 소비의 외연이 넓어지다
액티브 시니어 시장의 성장은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건강기능식품과 의료기기는 물론, 해외여행·문화강좌·반려동물 서비스까지 60대 이상 소비자가 핵심 고객층으로 부상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국내 고령 친화 산업 시장 규모가 2030년 1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1인당 소비 단가가 높고, 브랜드 충성도가 강하며, 구전 효과가 뚜렷하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이 시장을 예사롭게 보지 않는 이유다.
케어 서비스 업계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26년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코웨이의 상조·시니어 케어 자회사인 코웨이라이프솔루션의 2026년 3월 기준 가입 계정 수가 공시됐다. 이는 가전 렌털 기업이 시니어 케어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생활 밀착형 서비스가 노인 시장에서 새로운 수익 모델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요양과 돌봄의 경계를 넘어, '삶의 질을 유지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수요가 늘면서 기업들은 프리미엄 시니어 케어 패키지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일본이 30년 먼저 겪은 것, 한국은 더 빠르게 맞닥뜨린다
일본은 한국의 10~15년 전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일본은 1990년대 후반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뒤 실버 산업 생태계를 체계화했다. 유니버설 디자인 기반의 주거 리모델링, 고령자 전용 금융상품, 시니어 전문 여행사가 잇따라 등장했고, 이들 산업은 현재 일본 내수 경제의 주요 버팀목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반면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임에도 산업 생태계 정비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디지털 격차 문제는 시니어 소비 확대의 구조적 걸림돌이다. 모바일 쇼핑과 플랫폼 경제가 소비의 중심이 된 상황에서 고령층의 디지털 접근성이 낮으면 소비 기회 자체가 차단된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조사에서 70대 이상의 디지털 역량 수준은 전 연령 평균의 60% 수준에 그쳤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시니어 전용 키오스크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일부 플랫폼 기업은 큰 글씨·단순 화면 구성의 '시니어 모드'를 탑재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커지려면 '설계'가 먼저다
실버 경제가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성장하려면 공급자 중심의 상품 개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60대를 단일 집단으로 묶는 마케팅은 이미 낡은 방식이다. 건강 상태, 자산 수준, 거주 형태, 디지털 친숙도에 따라 시니어 소비자의 욕구는 세분화돼 있다. 60대 초반의 활동적 은퇴자와 75세 이상의 의료 의존도가 높은 고령자는 완전히 다른 시장이다.
정부도 고령 친화 산업 육성 방향을 손질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고령 친화 우수 제품 인증 제도를 운영하며 시장 신뢰를 높이려 하고 있고, 중소벤처기업부는 시니어 특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그러나 제도 사이의 칸막이는 여전하다. 의료와 비의료의 경계, 돌봄과 여가의 구분이 현실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현장의 비판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김 씨는 오늘도 앱을 켠다. 내일 등산 코스를 검색하고, 다음 달 유럽 패키지여행 후기를 읽는다. 그는 「돌봄」을 원하지 않는다. 「선택」을 원한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기업과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 사이의 간격이, 앞으로 실버 경제의 승패를 가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