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무너지는 속도는 외교 채널보다 빠르다.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규모 7.5의 연쇄 지진은 카라카스 도심 건물을 순식간에 잔해로 만들었다. 현지 주민들은 2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67년 카라카스 대지진보다 이번 진동이 더 심하게 느껴졌다고 증언한다. 수천 명의 사상자가 우려되는 가운데, 시간은 지금 이 순간도 흐르고 있다.
본지는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정치적 계산을 내려놓고 베네수엘라에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인도적 지원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그 근거는 세 가지다.
첫째, 재난의 규모가 일국의 대응 역량을 이미 넘어섰다. 이번 지진은 1900년 이후 베네수엘라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장기간의 경제 위기와 인프라 노후화로 이미 취약해진 사회 기반 위에 이 충격이 덮쳤다. 붕괴된 건물 잔해를 걷어낼 중장비도, 부상자를 치료할 의약품도, 이재민을 수용할 임시 시설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재난 구호에서 골든타임은 72시간이다. 그 시계는 이미 돌아가고 있다.
둘째, 인도주의 원칙은 어떤 정치적 맥락과도 분리되어야 한다. 베네수엘라와 한국은 외교적 거리가 멀고,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베네수엘라 정부에 대한 복잡한 시선이 존재한다. 그러나 지진 피해자는 정부가 아니다. 무너진 건물 아래 갇힌 사람들은 어떤 이념도, 어떤 외교 노선도 선택한 적 없다. 재난 앞에서 지원의 문을 닫는 것은 인도주의 원칙의 훼손이며, 국제사회 내 한국의 신뢰 자산을 스스로 갉아먹는 일이다. 한국은 과거 수많은 자연재해 현장에서 KDRT(해외긴급구호대)를 파견하며 쌓아온 인도적 지원의 전통을 이번에도 이어가야 한다.
셋째, 초당적 접근이 지원의 속도와 규모를 결정한다. 재난 구호가 국내 정쟁의 소재로 소비되는 순간, 지원은 더뎌지고 피해는 커진다. 현지 교민 125명의 안전이 확인되었다는 사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것이 외국 국적자에 대한 관심의 끝이어서는 안 된다. 여야는 이 사안만큼은 공동의 언어로 정부를 독려하고, 정부는 신속 결정권을 가진 채널을 통해 지원 규모를 확정해야 한다.
지진은 끝났지만 재난은 지금부터다. 무너진 건물을 치우고, 감염병을 막고, 이재민에게 물과 식량을 공급하는 과정은 수개월에 걸친 싸움이다. 한국 정부는 초기 긴급 구호와 함께 중장기 복구 지원 계획도 병행해 검토해야 한다. 국제사회 역시 단발성 성명에 그치지 말고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을 중심으로 자원을 조율하고 현장에 닿게 해야 한다.
잔해 속에서 살아 있는 목소리는 외교 문서를 읽지 못한다. 행동만 읽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