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태어나는 아이가 23만 명을 밑돌았다. 1970년대 100만 명이 넘던 때와 비교하면 4분의 1 토막이다. 정부가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배경이다. 선언은 했다. 그런데 선언 이후가 문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이 월 310만 원으로 전년 대비 510만 원 인상됐다. 숫자만 보면 파격이다. 실제로 이 돈을 받으며 육아휴직을 쓰는 직장인이 얼마나 될지는 다른 이야기다. 중소기업 재직자, 비정규직, 프리랜서, 자영업자. 이들은 애초에 육아휴직 제도의 수혜 바깥에 있다. 급여를 올려도 제도에 접근조차 못하는 구조라면, 인상 효과는 대기업 정규직에게만 돌아간다.

자녀 생후 18개월 이내 부모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쓰는 '6+6 부모육아휴직제'도 마찬가지다. 설계는 좋다. 아버지의 육아 참여를 유도하고, 어머니의 경력 단절을 줄이겠다는 의도도 분명하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아버지가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하면 팀장 눈치가 보인다」는 말이 나온다. 제도가 있어도 쓰지 못하는 건 법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 문화의 문제다. 급여를 아무리 올려도 이 벽을 넘지 못하면 숫자는 예쁘고 현실은 그대로다.

일·가정 양립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허락'이다.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허락, 재택근무나 유연근무를 요청할 수 있는 허락, 아이가 아프면 지각해도 불이익이 없다는 허락. 이 허락이 제도로 보장되고, 위반 시 실질적 제재가 따라야 한다. 지금처럼 「권고」 수준으로는 관행을 바꾸지 못한다. 육아휴직 사용을 이유로 한 불이익에 대한 처벌을 실제로 집행한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정부 스스로 공개할 필요가 있다.

돌봄 인프라도 빠진 고리다. 육아휴직이 끝나면 아이를 맡길 곳이 있어야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 기간이 수개월에서 1년을 넘는 지역이 여전히 많다.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기업 중 미이행 사업장도 적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제도가 사슬처럼 이어지지 않으면 중간에서 끊긴다. 육아휴직 급여 인상이 돌봄 공백 해소와 맞닿아 있지 않으면, 여성은 복직 대신 퇴직을 택한다. 이 선택이 반복될 때 출생률은 오르지 않는다.

비상사태 선언이 상징적 의지 표명으로 끝날지, 실질적 변화의 출발선이 될지는 지금부터가 갈린다. 급여 인상 수혜자가 전체 취업자의 몇 퍼센트인지, 6+6 육아휴직 실사용률이 얼마인지, 돌봄 인프라 공백이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심각한지를 정부가 매년 추적하고 공개해야 한다. 선언보다 측정이 먼저다. 측정이 없으면 책임도 없고, 책임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묻는 조사에서 「경제적 부담」 다음으로 자주 나오는 답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정책의 본질이다. 비상사태를 선언한 나라가, 정작 육아를 선택한 사람이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선언문은 그냥 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