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강원 고랭지 배추 산지 가격이 한 포기에 1만 원을 넘어섰다. 이상 고온과 폭우가 겹치면서 작황이 반 토막 났기 때문이다. 김장철이 아직 멀었는데도 주부들은 마트에서 발길을 돌렸고, 식당 사장들은 메뉴 가격표를 다시 계산기에 올렸다. 이것이 그저 '한 해 흉년'의 이야기라면 견딜 만하다. 문제는, 이런 해가 이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후변화는 농업에 가장 직접적이고 잔인하게 침투한다. 봄 가뭄이 파종 시기를 흔들고, 여름 집중호우가 수확 직전의 논밭을 쓸어버리며, 가을 이상 고온이 품질을 떨어뜨린다. 세계 주요 곡물 생산국들이 동시에 이상기후를 맞으면 국제 곡물 가격은 단기간에 폭등한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식량 위기를 촉발했을 때, 국제 밀 가격이 단 두 달 만에 60% 이상 치솟은 것은 지정학 리스크와 기후 리스크가 얼마나 쉽게 결합하는지를 보여준 생생한 사례였다.

한국은 특히 취약하다. 국내 식량 자급률은 칼로리 기준으로 40%대 중반에 머물고 있다. 쌀을 제외하면 밀 자급률은 1%대, 콩은 30%를 간신히 넘는다. 밥상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이상기후로 국제 시장이 요동치면 그 충격은 고스란히 소비자 물가로 전이된다. 수입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국내산도 따라 오르는 연동 구조 때문에, 자급하는 품목조차 안전하지 않다.

그렇다면 해법은 자급률을 높이는 것인데, 말처럼 쉽지 않다. 수십 년간 쌀 생산에 쏠린 농업 인프라를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고, 고령화된 농촌 인구는 새로운 작물 재배 전환에 소극적이다. 여기서 주목할 변화가 있다. 정부는 쌀 과잉 생산을 줄이고 밀·콩·옥수수 같은 주요 작물의 국산화를 촉진하기 위해 전략작물직불제 예산을 2025년 2,440억 원에서 2026년 4,196억 원으로 72% 이상 늘리기로 했다. 쌀 논을 타 작물 재배지로 전환하는 농가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방향 자체는 옳다. 그러나 예산 확대만으로 구조가 바뀌지는 않는다.

진짜 과제는 '수익성'이다. 농가 입장에서 국산 밀이나 콩을 키우는 것이 쌀보다 경제적으로 유리해야 한다. 직불금이 그 격차를 메우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국내 유통·가공 인프라가 뒤따르지 않으면 생산한 작물을 팔 곳이 없다. 국산 밀로 만든 면이 수입산보다 비싸면 제면업체는 쓰지 않는다. 결국 소비 시장과 가공 산업을 동시에 키우지 않으면, 보조금은 1회성 처방에 그친다.

스마트팜과 수직농장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이 역시 에너지 비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경제성이 없다.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이 식량 안보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분리해서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식량은 석유와 다르다. 비축하는 데 한계가 있고, 대체재도 없다. 한국이 외환위기 때 IMF를 버텼던 것은 식량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후가 더 극단적으로 변할수록 농업은 '비효율 산업'이 아니라 '전략 자산'으로 다시 읽혀야 한다. 예산 숫자가 커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돈이 정말 농지를 지키고 다음 세대 농업인을 붙잡는 데 쓰이느냐다. 밥값이 오르고 나서야 깨닫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