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는 '달라(dala)' 목마가 있다. 붉은 나무 말. 17세기 광부들이 긴 겨울밤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위해 깎아 만들었다는 장난감이다. 그 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아버지 육아휴직 사용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제도가 문화를 바꾼 것인지, 문화가 제도를 불렀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아버지가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고, 아이도 늘었다는 것.
한국의 숫자는 다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5명.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 해 태어나는 신생아 수는 23만 명대로 떨어졌다. 도시 하나가 매년 지워지는 속도다. 정부는 지난 20년간 수백조 원을 쏟아부었다. 돌아온 건 반등이 아니라 추락의 가속이었다.
이 맥락에서,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이 2026년 6월 발의한 이른바 '육아휴직 권리보장 세트법'은 단순한 법률 개정안이 아니다. 사업주의 승인 없이 근로자의 통지만으로 육아휴직이 자동 개시되도록 하는 이 법안의 핵심 정신은 이것이다. 육아휴직은 더 이상 허락을 구하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서 행사된다는 선언. 남성에게도 예외 없이.
반론은 거세다. 중소기업과 자영업계는 즉각 반발한다. 대체 인력 구하기도 어려운 판에, 핵심 직원이 사전 통보만으로 자리를 비운다면 현장이 멈춘다는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300인 미만 사업장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문다. 제도는 있되 현실은 없다. 이 간극이 진짜 문제다.
그러나 이 반론을 제도 도입 불가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권리는 '현실이 준비됐을 때' 주어진 적이 없다. 여성 참정권도, 최저임금제도도, 주 52시간도 모두 '시기상조'라는 저항 속에 법제화됐고, 이후 현실이 서서히 따라왔다. 의무화는 강요가 아니라 기준점을 바꾸는 행위다. 아버지가 아이 곁에 있는 것을 '특이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로 만드는 사회적 재설정.
다만 법안의 실효성은 설계에 달려 있다. 아이슬란드는 부모 각각 독립적 육아휴직 기간을 보장하되, 이를 상대방에게 양도할 수 없게 했다. 아버지가 쓰지 않으면 소멸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통지만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과, '쓰지 않으면 국가가 손해로 인식하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압력을 사회에 가한다. 한국이 도입을 논의한다면, 대체 인력 지원 예산의 동시 확충, 중소기업 전용 육아휴직 보험 체계, 그리고 사용 기간의 일부를 아버지 전용으로 지정하는 '파파 쿼터제' 병행이 현실적 설계안으로 검토될 만하다.
비판자들은 묻는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정말 아버지의 육아휴직 때문이냐고. 집값, 사교육비, 고용 불안이 더 근본 아니냐고. 맞다. 하나의 정책이 저출생을 단독으로 해결한다는 주장은 허황되다. 그러나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 순간, 그 결심 앞에 놓인 가장 구체적인 공포 중 하나가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감각'이라는 걸, 수많은 30대 여성들이 증언한다. 아버지의 육아휴직 의무화는 그 공포에 국가가 직접 답하는 방식이다.
아이는 의무로 낳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는, 때로 의무로 만들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