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국의 대미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의 약 18%를 차지했다. 반도체·자동차·이차전지가 주력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을 포함한 모든 교역국에 10~20% 수준의 보편 관세 부과를 공언하면서, 이 숫자가 한국 수출 기업들의 수익성을 직격할 변수로 떠올랐다. 고관세에 원·달러 환율 1,400원대 후반의 고환율 국면까지 겹치면서, 수출 현장의 긴장감은 수치보다 먼저 달아오르고 있다.
보편 관세가 실제로 발동되면
미국이 보편 관세를 현실화할 경우 한국 수출이 받는 충격은 업종마다 다르다. 자동차 완성차는 현지 생산 비중이 높아 일부 완충이 가능하지만, 부품 협력사들은 그렇지 않다. 반도체는 미국의 자국 내 공급망 재편 기조와 맞물려 단기적으로 관세 예외를 받을 가능성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공장 투자 압박이 커질 공산이 높다. 이차전지 분야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혜택 축소 우려에 관세 리스크까지 더해지면서 이중 압박에 놓였다.
문제는 중소·중견 수출기업이다. 대기업처럼 해외 생산 거점을 빠르게 이전하거나 현지 조달 구조를 재편하기 어렵다. 수출 다변화를 추진하고 싶어도 신규 바이어 발굴과 물류 비용이 장벽으로 작용한다. 관세 충격이 실제로 납품 단가 인하 압력이나 계약 해지로 이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몇 달이다.
정부, 패스트트랙·애로센터로 선제 대응
정부는 트럼프 2기 출범 직후부터 대응 체계를 가동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전국 13개 지방청에 '수출 애로신고센터'를 설치해 고관세·고환율 피해를 접수하고 있다. 수출 다변화를 추진하는 중소기업에는 정책자금 심사에 패스트트랙을 적용해 자금 조달 속도를 높였다. 수출바우처 물류비 지원 한도도 상향 조정해 신규 시장 진출 때 발생하는 초기 비용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지원 방향 자체는 맞다. 그러나 정책 설계와 실제 기업 현장 사이에는 항상 간극이 존재한다. 애로신고센터가 실질적인 솔루션 창구로 기능하려면 단순 접수에 그치지 않고, 바이어 매칭이나 통관·인증 지원까지 연결되는 원스톱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패스트트랙 역시 심사 속도는 높였지만, 담보력이 부족한 영세 제조업체에는 여전히 높은 문턱이라는 평가다.
공급망 다변화, 선택이 아닌 속도의 문제
수출 다변화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에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공급망 다변화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미국·중국·EU 3대 시장 의존도는 여전히 전체 수출의 절반을 웃돈다.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번은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동남아시아·인도·중동 등 신흥 시장의 구매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한국 중간재·소재 기업의 역할이 커질 여지가 생겼다는 논리다. 실제로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시장으로 수출을 확대하는 중견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그러나 신시장 개척은 시간이 걸린다. 바이어 신뢰 구축, 현지 인증 취득, 물류 루트 확보 모두 최소 1~2년의 준비 기간을 요구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가 예고 없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기업들이 실제로 쓸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정책 지원이 기업의 준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피해는 정부 대책이 아닌 기업 재무제표에 고스란히 찍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