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융시장에서 오랫동안 '안전의 피난처'로 기능해온 세 자산이 동시에 약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란 전쟁 이후 미국 국채 금리는 상승했고, 금값은 연초 고점에서 크게 내려앉았으며, 일본 엔화는 달러에 대해 수십 년 만의 저점을 기록했다. 이는 전통적인 위기 대응 자산의 역할이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투자 심리의 변화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채권시장이다. 과거에는 국제 위기 발생 시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 수요를 늘렸으나, 현재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배럴당 60달러에서 120달러로 뛴 국제유가로 물가 우려가 확산되자 채권 실질 수익률 악화를 우려한 매도가 이어졌다. 미국 의회예산국의 2026회계연도 재정적자 전망(GDP 대비 5.8%)도 국채 가치 하락 우려를 부채질했다.

금의 부진 원인은 달러 강세와 실질금리 상승의 조합이다. 이자를 제공하지 않는 금의 속성상 실질금리가 오르면 투자 유인이 줄어든다. 지난해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 유입이 금값 급등을 뒷받침했으나, 최근에는 투기 자금이 가격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엔화 약세는 더욱 심각하다.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30년 만의 고점으로 인상하고 국채 금리도 올렸지만, 엔화는 약세를 멈추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740억달러 규모 외환 개입에도 불구하고 7월 초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62엔까지 올랐다. 미국과 일본 간 금리 격차(여전히 큼)와 일본의 국가부채 비율(GDP 대비 204.4%, 주요국 최고 수준)이 구조적 약세를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전자산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자산별 반응 구조가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지정학적 위기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인플레이션, 금리 수준, 재정 건전성 같은 거시경제 요인이 자산 가격을 움직이는 주요 변수로 부상했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은 단일 안전자산에 의존하는 전략보다 여러 자산군에 걸친 분산 포트폴리오 구성의 필요성을 깨달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