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서울 마포구의 한 공유오피스. 대기업 퇴직 후 2년 만에 인공지능(AI) 데이터 라벨링 기업에 재취업한 박모(63) 씨가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그의 옆자리에는 육아휴직 후 유연근무제를 활용해 하루 4시간씩 근무하는 워킹맘 이모(37) 씨가 협업 도구를 활용해 업무를 조율 중이다. 나이와 성별의 경계를 넘어선 이들의 협업은 더 이상 이색적인 풍경이 아니다.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중심축이 급격히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단면이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여성과 고령층은 이제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핵심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1000만 돌파한 고령층 경제활동, 일터로 향하는 '실버 노동력'

통계청이 발표한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25년 5월 기준으로 55세에서 79세 사이의 고령층 경제활동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고령층 인구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일터에 있거나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벌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은퇴 후 여가를 즐기던 과거의 노년상과는 완전히 다른,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들이 대한민국 산업 현장의 새로운 버팀목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평균 수명 연장에 따른 현상만은 아니다.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 실제 은퇴 시기 사이의 소득 공백을 메워야 하는 경제적 요인과 더불어, 일하고자 하는 자아실현 욕구가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고령층의 노동시장 잔류가 급격한 인구 절벽 압박을 완화하는 완충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들이 진입하는 일자리의 질적 수준에 대해서는 여전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단순 노무나 임시직에 편중된 고령층 일자리를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고도화하는 체계적인 접근이 시급한 시점이다.

시간과 공간의 장벽 허무는 '유연근무', 여성 경제활동의 마중물

고령층과 함께 노동시장의 또 다른 핵심 축으로 주목받는 이들은 바로 '여성'이다. 특히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문제는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최근 급부상하는 것이 바로 '유연근무제'의 확산이다. 시공간의 제약을 줄여주는 재택근무, 시차출퇴근제, 단시간 근로 등은 여성 인력이 노동시장을 이탈하지 않고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유인책이 되고 있다.

실제로 유연근무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기업들 사이에서는 우수한 여성 인재의 이탈률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중소기업이나 제조업 등 현장 근무가 필수적인 업종에서는 유연근무 도입률이 저조해, 기업 규모와 업종에 따른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정부 차원의 세제 혜택과 인프라 지원이 보다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단순 고용 넘어 '지속 가능한 재교육 인프라' 구축해야

여성과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율을 양적으로 늘리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질적인 도약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 핵심 열쇠는 바로 '재교육 인프라'의 고도화에 있다. 급격한 디지털 전환과 기술 고도화 속에서 기존의 직무 역량만으로는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층의 경우 과거의 경력에만 의존하기보다 디지털 리터러시를 높이고 새로운 직무 능력을 습득할 수 있는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다양한 직업 훈련 과정을 제공하고 있으나, 현장 수요와의 미스매치 현상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산업계가 실제로 요구하는 기술 수준과 교육 내용 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민관 협력형 교육 플랫폼의 활성화가 요구된다. 여성의 경우에도 단순 사무직 위주의 재취업 교육에서 벗어나 IT, 바이오 등 미래 유망 산업군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고단계 기술 교육 기회가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인구 감소라는 정해진 미래 앞에서 여성과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유연한 일자리 생태계 조성과 촘촘한 재교육 안전망 구축만이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을 돌릴 유일한 해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