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사는 직장인 A씨는 지난해 가을, 7살 반려견이 디스크 진단을 받은 뒤 동물병원 청구서를 보고 숨이 막혔다. MRI 촬영에 수술, 입원비까지 더해 250만 원이 넘었다. 같은 증상으로 강남의 다른 동물병원을 먼저 찾았을 때는 300만 원을 웃도는 견적이 나왔었다. 똑같은 병명, 전혀 다른 가격표. A씨는 결국 세 곳을 비교한 뒤 치료를 결정했지만, 그 사이 강아지의 통증 관리가 늦어졌다고 자책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2월 발표한 '2025년 반려동물 양육현황 조사'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양육가구 비율은 29.2%에 달한다. 세 가구 중 하나가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얘기다. 마리당 월평균 양육비도 만만찮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그 중 의료비가 가구 부담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문제는 이 비용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동물 진료비에는 현행법상 표준 수가 체계가 없다. 병원마다 같은 처치에 수십만 원 차이가 나는 구조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진료비 불투명성, 불신의 뿌리

사람의 경우 건강보험이 진료비 상한을 사실상 규율한다. 반려동물은 다르다. 수의사가 자율적으로 가격을 책정하고, 소비자는 청구서를 받기 전까지 얼마가 나올지 알 수 없다. 농식품부가 반려동물 진료비 고지 의무화와 진료항목 표준화를 추진해온 이유다. 2023년 수의사법 개정으로 주요 항목의 진료비 게시 의무가 도입됐지만, 항목 분류 기준이 통일되지 않아 소비자 비교는 여전히 어렵다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수의업계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표준 수가를 강제하면 지방 소규모 동물병원이 경영난에 빠질 수 있다는 논리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임대료와 장비 비용이 서울 도심과 농촌이 같을 수 없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보 비대칭 자체가 문제다. 얼마를 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아픈 동물을 데리고 병원을 찾는 보호자는, 협상력이 없다.

반려동물 보험, 왜 아직도 '찬밥'인가

펫보험 가입률은 전체 반려가구 대비 1%대 안팎으로 추산된다. 영국(25% 이상), 스웨덴(40% 이상)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가입률이 낮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보험료 대비 보장 범위가 좁다는 인식이 강하다. 선천성 질환, 치과 질환, 노령견 관련 질병 등 정작 많이 쓰이는 항목이 면책 조건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진료비 표준화가 안 된 탓에 보험사도 손해율을 예측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보장은 좁고 보험료는 높은 악순환이 반복된다.

정부는 펫보험 활성화를 위해 동물등록제 연계 데이터 구축과 표준 진료 코드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료 기록이 표준화되면 보험사가 손해율을 계산할 수 있고, 그래야 보장 범위도 넓어지고 보험료도 내려간다는 논리다. 선후 관계가 분명하다. 진료비 표준화와 보험 활성화는 별개의 과제가 아니라 같은 사슬의 두 고리다.

펫코노미의 이면, 누가 혜택을 보는가

국내 반려동물 관련 시장은 수조 원대로 성장했다. 사료·용품·서비스·의료를 아우르는 이른바 '펫코노미'다. 시장은 커졌지만, 그 성장의 과실이 반려가구의 부담 완화로 이어지고 있느냐는 물음엔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프리미엄 제품과 서비스는 늘었지만 의료비 안전망은 제자리다. 저소득 반려가구는 치료를 포기하거나 동물을 유기하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결국 진료비 표준화와 보험 활성화는 동물복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보호자가 비용 부담 없이 제때 치료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방치와 유기를 줄일 수 있다. 시장이 성숙할수록 제도의 뼈대도 함께 단단해져야 한다는 것, 반려동물 1000만 마리 시대가 던지는 진짜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