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으면서, 가파른 상승세를 타던 국내 건설 및 조선업계의 해외 수주 전선에 급제동이 걸렸다. 올해 초 설정한 해외 수주 목표치의 50.7%를 잠정 달성하며 순항하던 국내 기업들은 예기치 못한 전쟁 위기라는 거대한 암초를 만났다. 중동은 국내 EPC(설계·조달·시공) 기업들과 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사들에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의 파장은 단순한 심리적 위축을 넘어 실질적인 경영 리스크로 전이되는 양상이다.

지정학적 리스크의 현실화, 흔들리는 수주 텃밭

관련 업계와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국내 건설업계는 중동발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에 힘입어 연간 목표치의 50.7%를 잠정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프로젝트와 아랍에미리트(UAE)의 가스전 개발 등 초대형 사업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직접 충돌 가능성이 고조되고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감이 극에 달하면서, 기확보한 프로젝트의 착공 지연과 신규 발주 보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특히 조선업계의 경우,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은 해상 물류망 마비와 직결된다. 홍해 사태 장기화로 우회 항로를 택하면서 운송 기간이 늘어났고, 이는 기자재 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동 선주들이 발주를 검토하던 LNG 운반선 및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의 신규 계약 협상도 잠정 중단되거나 지연될 조짐을 보이면서, 하반기 추가 수주 전선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기 지연과 원가 상승, 기업들의 2중고

중동 프로젝트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공사 기간 연장(Extension of Time)'에 따른 지체상금과 원가율 상승이다. 과거 중동 분쟁 사례를 분석해 보면, 전쟁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현지 인력 철수와 자재 반입 중단으로 공사가 수개월씩 중단되곤 했다. 현재 중동 지역에 진출한 국내 건설사들은 현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비상 대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고금리 기조가 맞물린 상황에서 공기 지연은 기업의 수익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금융 조달 환경의 악화도 악재다. 중동 지역의 국가 신용도가 흔들릴 경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금리가 급등하여 사업성 자체가 저하된다. 이는 발주처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져 사업 규모 축소나 잠정 중단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연결될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단순한 유가 상승에 따른 오일머니 유입 효과보다, 지정학적 위험으로 인한 실행 리스크가 기업들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선제적 리스크 관리 시급

악화일로를 걷는 중동 정세 속에서 국내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 가동과 시장 다변화가 필수적이다. 중동에 편중된 수주 포트폴리오를 북미, 유럽, 동남아시아 등으로 빠르게 분산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한 현지 공장 건설이나 유럽의 친환경 에너지 플랜트 시장으로 눈을 돌리며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외교적 중재 노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지 진출 기업들의 안전 확보를 위한 실시간 정보 공유 체계를 강화하고,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해 일시적인 자금 경색을 막아야 한다. 미증유의 중동 위기는 한국 경제의 핵심 축인 건설과 조선업의 위기 관리 능력을 시험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철저한 리스크 분산과 선제적 대응만이 먹구름 가득한 중동 전선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해법이다.